9개 경제권 대미 투자 약속 약 6조달러 분석
中 직접수입 비중 줄었지만 ‘연결국’ 통한 부가가치는 증가
美 재정적자·AI 투자 따른 세계 금리 상승 위험도 제기
아담 포젠 PIIE 소장이 27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한경협-FIIE 국제컨퍼런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더파워 이경호 기자]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협상을 통해 주요 교역국에서 이끌어낸 약 6조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을 두고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서 ‘역(逆)마셜플랜’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의 고율 관세에도 중국산 부가가치가 멕시코와 베트남 등 제3국을 거쳐 미국으로 유입되면서 미·중 교역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다는 진단도 제시됐다.
한국경제인협회는 27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PIIE와 함께 ‘분열의 시대, 새로운 성장 전략: 무역, 산업, 일자리의 미래’를 주제로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에서는 관세 갈등과 공급망 재편, 인공지능(AI) 확산 속 세계경제 변화와 한국의 성장 전략을 놓고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의 발표와 토론이 진행됐다.
류진 한경협 회장은 개회사에서 "분열과 갈등을 넘어설 힘은 결국 성장에서 나온다"며 "기업의 투자와 혁신이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열고, 진취적인 정책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성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금은 과거의 통상 문법이 통하지 않는 대전환기"라며 "한국은 신뢰 기반의 기술·산업 파트너십을 다지고 민·관이 힘을 모아 분열과 갈등을 넘어 글로벌 연대로 나아가는 가교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조연설에서는 AI와 생산성, 일자리 문제가 다뤄졌다.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 총재는 "AI로 인한 일자리 감소는 아직 실증적 증거가 부족하다"며 AI를 활용해 노동 생산성과 근로 환경을 개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에 대해서는 대규모 비용이 들어가는 자체 거대 모델보다 농업·교육·보건 현장에 활용할 수 있는 저비용·단순화된 ‘스몰 AI’에 집중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아담 포젠 PIIE 소장은 AI 기술이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국과 같은 개방형 경제가 협력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는 저출생·고령화로 성장 잠재력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AI를 통한 생산성 향상과 구조개혁 필요성을 언급했다.
미국의 재정적자와 AI 설비투자가 세계 금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경고도 나왔다.
킴벌리 클로징 PIIE 객원연구위원은 미국의 관세 장벽이 무역의 이득을 훼손하고 있으며 미국 소비자뿐 아니라 대미 수출국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재정적자와 AI 설비투자가 세계 금리를 끌어올리면서 다른 국가의 투자 여력을 줄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이재우 한국경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저금리 시기에 조달된 AI 투자자금과 국가·가계부채가 고금리 환경에서 차환되는 과정을 세계경제의 주요 위험요인으로 제시했다.
한국경제에 대해서는 반도체를 제외한 성장률이 전체 성장률에 크게 못 미친다고 평가했다. 이 연구위원은 재정과 가계, 주식시장의 반도체 경기 의존도를 언급하며 장기금리와 환율, 반도체 가격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AI 경쟁과 관련해서는 중국의 오픈웨이트 모델 확산이 주요 변수로 제시됐다.
마틴 초르젬파 PIIE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이 AI 반도체 분야에서는 미국에 뒤처져 있지만 오픈웨이트 모델을 통해 글로벌 AI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에는 AI 인재와 컴퓨팅 인프라를 확대하고 미국과 중국의 모델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제조 역량과 산업 데이터를 미국의 첨단 AI 모델과 결합해 피지컬 AI 분야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통상 분야에서는 미국의 관세와 대미 투자 정책에 대한 분석이 집중적으로 제시됐다.
마커스 놀랜드 PIIE 부소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협상 과정에서 9개 경제권으로부터 이끌어낸 약 6조달러의 대미 투자 약속을 ‘역마셜플랜(Marshall Plan in reverse)’이라고 표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서유럽 재건에 자금을 지원했던 마셜플랜과 달리 이번에는 미국의 교역 상대국들이 미국 제조업 재건에 자금을 투입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놀랜드 부소장의 분석에서는 일본·한국·대만의 성장률이 소폭 낮아지고 미국은 성장률이 다소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달러 강세로 미국의 무역적자는 오히려 확대되는 결과가 제시됐다. 한국은 투자 기간이 10년으로 일본의 4년보다 길어 충격이 상대적으로 작을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의 대중국 관세가 양국 교역을 완전히 분리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메리 러블리 PIIE 선임연구위원은 ‘후퇴가 아닌 우회(Rerouting Not Retreat)’를 주제로 미국 수입에서 중국으로부터 직접 들어오는 상품 비중이 2017년 22%에서 2025년 9%로 낮아졌다고 밝혔다.
반면 멕시코와 베트남 등 이른바 ‘연결국(connector)’을 거쳐 미국으로 들어오는 중국산 부가가치 비중은 같은 기간 16%에서 25%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러블리 연구위원은 이를 근거로 미국의 관세 장벽이 미·중 디커플링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한국의 교역 다변화 필요성을 제시했다.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국제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우리 기업의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며 "교역 상대와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AI 인재와 인프라를 확충하는 한편 대미 투자가 국산 장비·기자재 수출로 이어지도록 실질적인 성과를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터슨연구소를 비롯한 국내외 싱크탱크와 협력을 확대해 오늘의 제언이 정부 정책과 기업 전략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