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경호 기자]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포지티브 규제 환경을 가지고 있다. 허용되는 사항을 밝히고 이에 포함되지 않은 사항은 모두 불허하는 포지티브 규제 환경하에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아 규제 허용 범위에 포함될 수 없는 혁신 비즈니스는 도입 단계부터 규제 이슈 발생이 불가피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정부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전환 등 '선 허용-후 규제' 체계 구축을 바탕으로 하는 규제 환경의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덩어리 규제’와 ‘기존 법령의 유추해석을 통한 확대적용’ 등 혁신 비즈니스 도입을 막는 규제 이슈들은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공유숙박’은 복잡한 덩어리 규제로 인해 해외와 동등한 수준의 사업을 운영할 수 없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내 공유숙박 비즈니스는 농림축산식품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등 여러 부처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연관된 법령과 규제만해도 농어촌정비법, 관광진흥법,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 관련 지침, 공중위생관리법, 한옥 등 건축자산법 등이 있다. 현재 이 중 농어촌정비법과 관광진흥법을 대상으로 규제샌드박스를 통한 제한적인 범위의 실증 사업이 진행 중이다.
최근 규제샌드박스 실증 과제 중에도 덩어리 규제와 관련한 이슈가 제기됐다. 국내에서 개발한 세계 첫 수소전기 지게차가 덩어리 규제로 인해 1년 가까이 실증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자유특구를 통해 실증특례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양산 체제 수준의 인증검사 조건이 숨은 규제로 작용했다. 사업화 단계에서는 안전을 고려해 높은 수준의 인증이 필요하지만 혁신 비즈니스 관련 덩어리 규제를 패키지로 완화한다는 규제샌드박스 제도 취지를 고려하면 실증 단계에서 적용하기에는 부대조건이 과하게 적용된 내용이다.
‘택시택배’는 기존 법령의 유추해석을 통한 확대 적용으로 인해 사업이 중단된 경우이다. 택시택배 서비스는 대상 법령인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서는 고속버스 등 노선 사업자의 소화물 운송만을 규정하고 있으며, 구역 사업자인 택시에 대한 규정이 없어 법령 적용이 모호한 상황이었다. 이에 서울시는 택시배송 서비스를 행정처분 대상으로
해석하였고, 국토교통부는 법령의 입법 취지를 고려하여 화물운송과 여객운송 간 질서 확립 측면에서 규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데이터 확보가 필수적인 인공지능(AI) 관련 기업들도 기존 법령의 확대 적용으로 인해 국내에서 기술 개발을 이어 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해외에서는 인공지능, 자율주행과 관련된 데이터를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반면 국내는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인해 데이터 확보가 제한적이라 기술 개발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개인정보보호법은 인터넷 관련 기업이 거의 없던 1999년에 제정되었는데, 그 당시 생겨난 법령이 인공지능(AI) 비즈니스 관련 규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신기술·신산업의 발전에 따라 규제 영역이 복잡해지고 있다. 관련 부처가 다양해지면서 덩어리 규제가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있음에도 덩어리 규제에 대한 실질적인 개선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덩어리 규제 이슈는 비즈니스 관점이 아닌 법령과 관리 주체가 중심이 되어 생기는 문제로,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미도입 비즈니스와 관련된 덩어리 규제를 발굴하고, 정부 차원의 선제적인 규제 개선과 함께 혁신 비즈니스 관점에서의 관리가 필요하다.
2022 스타트업코리아!’ 정책 제안 보고서
‘2022 스타트업코리아!’ 정책 제안 보고서는 혁신 비즈니스 관점에서 규제를 효과적으로 발굴하기 위해서는 현재 운영 중인 규제샌드박스의 실증 과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규제샌드박스는 ‘22년 현재 운영 4년차로, 그 동안 다양한 혁신 비즈니스가 검토됐다. 규제샌드박스에 신청 접수된 과제 중 승인되지 않았거나 실증 사업 범위 등이 제한된 과제, 개시가 지연된 과제 등을 검토하면 실증 사업을 중심으로 덩어리 규제를 효과적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발굴된 덩어리 규제에 대해서는 대상 규제의 시장 파급력 및 안전성, 대상 규제의 성격 등을 고려한 정부 차원의 선제적인 규제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규제혁신제도 운영에 있어, 규제 개선의 관점을 개별 단위 규제가 아닌 혁신 비즈니스 단위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수소전기 지게차와 같이 실증 사업 승인 이후 숨은 규제가 발굴되어 실증 사업이 지연되는 사례가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규제샌드박스 실증 사업의 심의 과정이 규제를 특정하는 것이 아닌 비즈니스를 특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또한 승인이 이루어진 이후에는 실증 사업 운영 중에 드러나는 숨은 규제는 실증 사업 기간 중에는 규제 적용을 피할 수 있게 하고, 실증 기간 종료 후에는 숨은 규제 또한 임시허가 및 법령 개정 대상으로 함께 검토될 수 있어야 한다.
보고서는 기존 법령을 유추해석 하면서 생기는 문제 역시 혁신 비즈니스 도입을 지연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혁신 비즈니스 관점의 규제 발굴 시, 정확하게 명시되지 않은 규제에 대한 유추해석을 지양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입증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 차원에서 해당 규제의 필요성을 입증하고, 입증 결과에 따른 정부 차원의 선제적 규제 정비가 이어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 규제샌드박스에서 운영하고 있는 신속확인 제도 또한 입증책임 강화가 필요하다. 신속확인 제도는 기업이 신청한 사업 내용에 대해 관련 규제부처에서 '규제 있음'과 '규제 없음'을 확인해주는 지원제도다. 다만 ‘규제 있음’ 판단에는 문제 발생 소지나 범죄 우려 등의 의견도 포함되어 불필요한 샌드박스가 운영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규제가 모호한 경우 '규제 있음'으로 일괄 판단하지 않고 관련 내용에 대해 규제부처에서 입증하는 방식의 제도 정비가 검토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