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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썸걸즈', 연애의 본질 따끔하게 짚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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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썸걸즈', 연애의 본질 따끔하게 짚어

정지혜 기자

기사입력 : 2014-07-02 10:21

[리뷰] '리얼월드'의 연애 문제 따끔하게 짚어

▲연극열전
▲연극열전


이 남자 진짜 ‘나쁜 남자’다. 결혼하기 전, 자신이 상처 준 여자들을 호텔 방으로 불러 ‘지난 과거를 깔끔히 정리’하고 싶단다. 여자들은 묻는다. ‘그때 왜 그랬어?’ 남자는 말한다. ‘사정이 있었다’고. 남자는 가려는 여자를 붙잡고 구태여 확인하려 한다. ‘그때 내가 너한테 상처 준 건 아니지?’

연애의 끝에서 늘 홀로 달아났던 남자는 자신이 여자들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은연중에’ 알 뿐,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과거를 과거로 남겨둔 한 남자와, 과거를 ‘판도라의 상자’로 제쳐두고 산 네 여자. 연극 ‘썸걸즈’는 ‘사랑’을 바탕으로 한 기묘한 권력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을 ‘권력’으로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애석하게도, 우리 주변에서 그러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더 사랑한 사람이 죄인’이라는 관용어는 안타깝게도 진실에 가깝다. 영민을 사랑한 여자들은 죄인이 되고, 늘 말없이 여자들을 떠난 영민은 권력 최상위의 권력가가 된다. 그의 권력은 사랑이 끝난 후에도 계속된다. 영민은 떠난 후에도 여자들의 기억 한 편을 지배하고, 여전히 강한 힘으로 휘두른다. 그의 말 한마디에 내둘리는 여자들을 볼 때마다, 답답하고 성이 차오르는 것도 내 연애의 한 페이지를 확인하는 듯한 쓰라림 때문이다.

▲연극열전
▲연극열전


영민의 비겁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진실’을 요구하는 여자 앞에선 끝까지 농담 따먹기 식으로 말을 빙빙 돌려대고, ‘세컨드’로 두었던 여자에겐 ‘퍼스트’에 대해 털어놓는다. 심지어 호텔로 불러들인 여자들의 말을 녹음해 소설의 소스로 사용할 음흉한 계획까지 갖고 있다.

영민은 여자들의 말을 녹음한 것을 소진에게 들키자, ‘나 소설가야!’라는 말 뒤에 숨는다. 짜증나다 못해 지질해 보이기까지 한 그의 변명을 듣고 있으면, 그의 번지르르 한 말들 사이에 과연 진심이 있긴 했던 것일까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여성 관객들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삶을 스쳐 지나간 또 다른 ‘개자식’이 떠오른다. 이것이 공연을 보며 수많은 여성 관객이 욕을 입천장까지 끌어올리게 되는 이유다.

영민의 비겁함이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 남자만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연애 시절의 ‘비겁함’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음직하다. 다른 누군가가 좋아졌을 수도 있고, 마음이 식어버렸을 수도 있다. 헤어지긴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문제는 남자, 여자를 떠나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 연극 ‘썸걸즈’가 화나면서도 공감 가는 것은, 바로 이 ‘리얼 월드’의 문제를 따끔하게 짚어내는 ‘적확함’ 때문이다.

▲연극열전
▲연극열전


오래도록 연극 ‘썸걸즈’에 출연해 왔던 이석준은 올해 연출가로 작품과 함께했다. 무대 곳곳에는 그의 관록을 보여주는 장치들이 가득하다. 회전 무대는 네 명의 여자가 보여주는 사랑의 한 단면을, 적절하고 은근한 조명 변화는 병렬식 이야기를 배치하는 데 효과적이다. 능글맞은 대사와 유머코드는 그의 말투를 빌린 듯 능청스럽고 재치가 넘친다.

연극 ‘썸걸즈’는 로맨틱 코미디라기보다 ‘블랙 코미디’다. ‘현실 연애의 모든 것’이란 제목의 ‘리얼 러브 버라이어티’를 보는 것도 같다. 네 여자의 ‘웃픈(웃기고 슬픈)’ 사연들을 듣자면, 나의 연애 라이프의 치명적인 오점이 그려진다. 어쩌면 공연을 보며 반성해야 할 것은 ‘알면서도 나쁜 남자에게 낚이고 마는 나의 철없는 심장’일지도 모른다. 그때쯤이면 이런 말이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젠 떨쳐버릴 때도 됐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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