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이선기 기자] “‘웹툰’이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고유명사입니다. 해외에서는 웹툰 산업이 활발하지 않아 인터넷 코믹이라는 용어로만 사용되고 있었죠. 한국은 웹만화, 즉 웹툰의 종주국으로 발돋음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습니다.”
지난 17일 ‘4차 산업혁명시대 웹툰 IP·플랫폼 글로벌화 전략 토론회’ 첫 번째 발제를 맡았던 웹툰협회 전세훈 부회장이 했던 말이다. 인터넷만화 산업에서 한국의 웹툰이 전세계 만화시장의 고유문법이 돼가고 있다는 뜻이다.
문화콘텐츠의 신흥 아이콘으로 떠오른 웹툰. 웹툰은 인터넷 공간을 뜻하는 ‘웹(Web)’과 만화를 뜻하는 ‘카툰(Cartoon)’이라는 단어를 결합한 합성어다. 만화에 정보통신기술(ICT)이 더해져, 종이만화의 한계를 극복하는 온라인 만화 플랫폼으로 발전했다. 이전에는 만화책을 일일이 빌려서 봤지만, 지금은 온라인 만화 플랫폼에서 손쉽게 만화를 소비한다. 배경음악과 각종 효과가 가미된 새로운 만화 문법은 종이만화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감성을 더한다. 웹툰은 가장 잠재력이 높은 문화콘텐츠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 웹툰 시장은 그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다. 뛰어난 ICT인프라와 높은 모바일 보급률에 힘입어 매년 20% 이상의 높은 시장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국내 웹툰 플랫폼은 40여 개를 넘어섰고, 전체 만화시장 규모는 거의 1조 원을 바라본다. 해외 진출 소식도 끊임없이 들린다. 중국, 일본, 대만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북미에서도 한국 웹툰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웹툰은 이제 짧은 시간 동안 가볍게 즐기는 콘텐츠 소비 문화 ‘스낵컬처’의 대표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새로운 한류콘텐츠로 부상할 잠재력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한국 웹툰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취해야 할 전략에 대해 다방면의 논의가 이뤄졌다. 웹툰 시장의 현황부터 4차산업 기술과의 융합, 체계적인 기획구상, 투자지원, 불법공유 문제 등을 짚어보고 발전방안을 논의했다. 업계, 작가, 학계, 만화팬 등 다수의 인원이 참석했다.
‘4차 산업혁명시대 웹툰 IP·플랫폼 글로벌화 전략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바로 웹툰의 성장 동력에 대한 부분이었다. 웹툰의 잠재력은 웹툰 본연의 가치보다는 콘텐츠에서 확장되는 2차 창작물, 즉 웹툰의 원천 소스로부터 나오는 지적재산권(IP)에 더 큰 가치가 있다는 점이었다.
웹툰협회 전세훈 부회장은 발제에서 웹툰을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다양한 2차 창작물의 성공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파일럿 콘텐츠’”라고 정의했다.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가는 영상 콘텐츠에 비해, 웹툰은 적은 예산으로 콘텐츠의 성공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 이미 많은 웹툰 원작 영화와 드라마가 이미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그리고 이들 간에는 공통점이 존재했다. 이미 웹툰 플랫폼을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인기 원작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콘텐츠에 대한 신뢰도가 있었고, 방영되기도 이전에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로 인해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미생'
웹툰 플랫폼 코미카 김창민 대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발전한 ‘트랜스미디어’ 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원천 콘텐츠로부터 다양한 IP를 생산하는 OSMU(One Source Multi Use)를 넘어, 기획 단계에서부터 2차 IP콘텐츠를 염두에 두고 이들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전략이다. 모든 관련 콘텐츠와 플랫폼이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끊임없이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것들이 하나로 이어져 소비자들을 더 빠져들게 만든다.
마블 시네마틱 스튜디오의 영화들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마블은 하나의 큰 세계관 안에서 다양한 영화를 만들고,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더 끈끈한 이야기를 생산해낸다. 어벤져스가 폭발적 인기를 과시하는 이유는 개별 캐릭터들의 배경을 관객들이 모두 세세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개별 트릴로지로 배경을 충분히 제시한 바 있으니 말이다. 세계관 자체가 하나의 큰 트랜스미디어 상품인 셈이다. 마블을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밖에 안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처럼 웹툰IP는 웹툰 산업이 더 발전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철저한 기획 아래 다양한 IP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웹툰 뿐만 아니라 문화산업 전체의 동반성장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어느정도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웹툰 플랫폼과 영화사 혹은 드라마 제작사 등이 손을 잡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판권 계약을 넘어 공동제작하는 곳도 적지 않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코미카는 중국 현지 합작 법인을 설립해 현지 문화를 반영한 트랜스미디어 전략으로 웹툰의 영상화에 성공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요리 소재의 웹툰과 연계해 현지 오프라인 레스토랑까지 런칭할 계획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IP중심의 트랜스미디어 전략이 오히려 원작의 깊이를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작가의 창작 능력에 플랫폼 혹은 기획사의 입김이 작용하기 손쉬운 구조가 되기 쉽다. 만약 작가의 창작 소재가 영상화하기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면? 적합하도록 이야기를 수정하도록 강요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작가 교체를 단행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작가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입맛에 맞는 작품만 만들게 될 것이다. 창작이 생산으로 바뀌는 셈이다.
또한 작가 대우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웹툰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는 반면, 많은 웹툰 작가들이 안정적인 수입을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창작이 생산으로 변질되는 상황이 초래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더 이상 고유한 창작 능력을 중요시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작가의 비중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웹툰 산업은 원천을 잃게 된다. IP로 활용할 원작이 사라지는 것이다.
한국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웹툰’이라는 단어. 그 속에 잠재된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어느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을 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꼭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다. 무엇을 하든 기본기가 가장 중요한 법이다. 기반이 없는 탑 쌓기는 언젠가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