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최병수 기자] 고물가와 고환율, 가계부채 부담이 겹치며 내년 국내 소매유통시장이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전국 소매유통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 유통산업 전망 조사'에서 내년 국내 소매유통시장 성장률이 0.6%에 그쳐 최근 5년 내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나타났다고 22일 밝혔다.
대한상의 조사에서 성장 둔화의 가장 큰 요인으로는 소비심리 위축(67.9%)이 지목됐다. 이어 고물가(46.5%), 시장경쟁 심화(34.0%), 가계부채 부담(25.8%), 소득·임금 불안(24.5%)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 기업들은 경기 불확실성과 생활비 부담이 계속되면서 소비 여력이 줄어들고, 이로 인해 유통업 전반의 성장세가 뚜렷이 둔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업태별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희비가 엇갈렸다. 온라인쇼핑 매출은 올해보다 3.2% 성장해 침체된 전체 소매 시장을 떠받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전통적인 오프라인 채널인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은 각각 -0.9% 성장에 그쳐 역성장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백화점과 편의점도 성장세가 미미해 각각 0.7%, 0.1% 증가에 머무를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이는 온라인 채널의 성장 배경으로 가성비와 실용성을 중시하는 합리적 소비 트렌드 확산과 배송 서비스 강화 등 비대면 쇼핑의 편의성 제고를 꼽았다. 반대로 오프라인 매장은 온라인과의 가격 경쟁 심화, 1~2인 가구 증가에 따른 소량·근거리 구매 확대, 상시 할인 경쟁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겹치면서 채널 전반의 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유통업계를 되돌아보는 질문에서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44.7%)이 7대 뉴스 가운데 1위로 꼽혔다. 경기침체 속 내수 진작을 위해 추진된 소비쿠폰 정책이 전통시장과 중소형 슈퍼 등 근린형 채널을 중심으로 매출 회복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다. 다만 응답 기업들은 전반적인 소비 부진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효과가 제한적이었다고 봤다. 이 밖에 내수 부진 지속(43.0%), 이커머스 성장세 둔화(38.3%) 등이 올해 유통산업을 상징하는 주요 이슈로 제시됐다.
전문가들은 국내시장 성장세가 정체되고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유통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려 신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경도 서강대 교수(한국유통학회장)는 "국내시장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유통산업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업해 K-뷰티, K-푸드 등 K-콘텐츠 연계 상품을 중심으로 글로벌 사우스(비서구권 개도국) 시장을 적극 개척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희원 대한상의 유통물류진흥원장은 "코리안 그랜드페스티벌과 같은 소비 진작책과 함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규제 개선, 지역 거점(5극3특)을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 육성, 인공지능(AI) 등 산업 인프라 구축을 병행해 위축된 소비심리를 회복하고 성장잠재력을 확충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