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유연수 기자] 고령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노년층의 정신건강 문제가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의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변기환 교수는 노년기 우울증이 노인 세대에서 가장 흔한 정신질환이자 자살과 직결되는 중대한 공중보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변 교수에 따르면 노년기 우울증은 기분장애 중 가장 흔한 형태로, 증상이 심할 경우 ‘주요우울장애(Major Depressive Disorder)’로 진단된다.
미국정신의학회 진단통계편람(DSM-5)에서는 2주 이상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이나 흥미·즐거움의 상실이 있으면서, 우울감·흥미 감소·체중·식욕 변화·불면 또는 과수면·초조나 지체·피로감·무가치감·집중력 저하·죽음이나 자살에 대한 반복적 사고 등 9가지 증상 가운데 5가지 이상이 2주 이상 지속될 때 주요우울장애로 본다.
무엇보다 이전과 비교해 직업·가사·대인관계 등 일상 기능이 뚜렷하게 떨어지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이 기준에 미치지 않더라도 일상에 지장을 줄 경우 지속성 우울장애나 기타 우울장애로 진단해 치료가 필요하다.
유병률과 심각성도 적지 않다. 국가정신건강포털 자료를 토대로 한 분석에 따르면 일반 노인 인구에서 주요우울장애 유병률은 1~4%, 경미한 우울증은 4~13% 수준으로 보고되며, 만성질환을 가진 노인에서는 이 비율이 두 배 이상 높아진다.
전체 성인(만 18세 이상) 인구의 주요·경미 우울증 유병률이 약 7.8%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노년기가 오히려 우울증이 가장 흔한 연령대라는 설명이다.
자살 위험도 크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자살 사망률이 인구 10만명당 26명 수준인 반면, 최근 통계에서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40.6명/10만명으로 훨씬 높다. 변 교수는 “노년기는 가장 우울하고, 동시에 자살이 가장 많은 세대”라며 “노년기 우울증은 더 이상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개입이 시급한 공중보건 과제”라고 말했다.
노년기 우울증은 다른 연령대와 구별되는 특징도 뚜렷하다. 젊은 층이 주관적인 우울감·무기력·죄책감 등을 직접 호소하는 것과 달리, 노년층은 두통·어지러움·가슴 두근거림·소화불량·허리통증 등 불특정한 신체 증상 중심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증상이 일관되지 않고 시간에 따라 달라지면서 여러 진료과를 전전한 뒤에야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자녀 독립과 은퇴, 사회적 관계 축소로 주변에서 변화를 빨리 알아차리기 어려운 점도 조기 진단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식욕 저하나 기력 감퇴를 단순히 나이 탓, 신체질환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여기고 넘어가는 것도 우울증 발견을 늦춘다. 은퇴, 자녀 독립, 배우자·친구의 상실 등 인생 주기 변화가 반복되면서 무력감과 무가치감이 깊어지지만, 이를 ‘늙으면 누구나 겪는 과정’으로 치부해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치매와의 중첩도 중요한 문제다. 국내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에서 치매 유병률은 약 9.25%, 경도인지장애는 28.4% 수준이며, 연령이 올라갈수록 치매 위험은 5.8년마다 두 배씩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인지 기능이 떨어지면 기존 활동 참여가 줄고 감정 표현이 둔해지면서 겉으로 보기에는 우울증과 유사한 양상을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치매 경과에서 우울 증상이 30~80%까지 동반된다는 보고도 있다. 반대로 우울증이 심하면 주의력과 집행기능이 떨어져 치매처럼 보일 수 있는데, 이 경우 적절히 치료하면 인지 기능이 회복될 수 있는 ‘가역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퇴행성 치매와 구별된다. 변 교수는 “치매와 우울증은 흔히 동반되고 감별도 쉽지 않아 노년기에는 둘 다를 염두에 둔 세심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변 교수는 노년기 우울증을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으로만 여기지 않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령 인구 증가와 함께 액티브 시니어가 등장하는 시대에 노년기 우울증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일은 개인의 삶의 질을 지키는 것을 넘어 사회의 소중한 인적 자원을 보호하는 일”이라며 “우울감을 느끼는 본인과 주변 가족·친지가 조기에 치료를 권유하고, 지역사회와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