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리턴즈 : 뉴미디어 콘텐츠에 나타난 여성 캐릭터 연구>, 저자 : 한혜원
오늘날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산업 중 하나는 뉴미디어 콘텐츠 산업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과 더불어 ‘콘텐츠는 곧 상품’이라는 경제 논리가 더해져 우리는 소위 콘텐츠의 홍수라 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콘텐츠를 수익 창출의 도구로 보는 경제적, 산업적 측면에 집중해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콘텐츠가 인간의 삶을 투영하며 나아가 미래의 문화적인 패러다임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놓치고 있었다. 이러한 시선과 접근이 없을 때 콘텐츠는 인간을 왜곡하여 반영하거나 편향된 시각을 투영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왜곡된 콘텐츠는 곧 다시 이를 향유하는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콘텐츠가 가지는 영향력이다.
오늘날 뉴미디어 콘텐츠 속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점이 고르게 투영되어 있을까? 콘텐츠의 사회문화 텍스트 속에 사회학적 성과 평등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반영되어 있을까?
이화여대 한혜원 교수는 뉴미디어 콘텐츠 속 ‘젠더 정체성’을 연구했다. 한 교수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캐릭터 '앨리스'에 주목한다. 1865년 동화로 시작한 캐릭터 ‘앨리스’는 이후 수차례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공연 등으로 계속해서 재현돼 왔다.
‘앨리스’는 재현될 당시의 사회와 문화,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캐릭터로 재해석 됐다. ‘앨리스’처럼 오늘날 뉴미디어 속 수많은 여성 캐릭터들도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며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역으로 미디어 속 캐릭터들을 살펴본다는 것은 이에 담긴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또 우리는 그 중에서도 캐릭터에 담긴 ‘젠더 정체성’을 살펴볼 수 있다.
한혜원 교수는 이 논의를 풀어 가기 위해 실제로 게임, 드라마, 영화, 팬픽, 웹소설, 홀로그램, 인공지능 등 다양한 장르 속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을 직접 시청하고 플레이하며 분석했다.
뉴미디어 속에 나타난 여성 캐릭터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한 교수가 본 여성 캐릭터의 모습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먼저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 캐릭터에 비해 확연하게 그 수가 적다. 그리고 스스로의 능력보다는 육체의 아름다움, 성적인 매력, 획일화된 여성의 아름다움이 강조된다. 역할에 있어서는 늘 스스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하고 누군가의 어머니, 딸, 조력자의 역할로서 존재한다. 또한 특히 게임에서는 남성 캐릭터의 행위의 동기나 보상으로 재현되는 양상을 보인다.
뉴미디어 속에 보이는 여성 캐릭터들의 한계는 우리 시대가 빠르게 발전하고 변하는 사회 속에서 여성의 사회학적 역할에 대한 인식이 전근대적이고 남성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콘텐츠들이 미래의 문화적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보다는 오히려 뒤쳐진 사회인식을 담고 있다는 문제 제기로도 연결될 수 있다. 아직도 수많은 뉴미디어 콘텐츠 속에서 여성은 ‘누군가를 위한 존재’로 남아있다.
그러나, 캐릭터들이 한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게임 속 왜곡된 성 기호를 부정하고 새로운 성역할을 규정하기 위해 노력했던 퍼플 게임과 인디게임, 금기시 되어온 여성의 신체를 예술적 담론으로 풀어낸 셸리 잭슨의 하이퍼텍스트 픽션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대부분 외국 사례이다. 콘텐츠 속 젠더 정체성에 대한 제대로 된 담론조차 없었던 우리나라 콘텐츠 시장에 던져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질문이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 콘텐츠에도 의미 있는 여성 정체성이 담긴 콘텐츠 영역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하나의 대중문학의 영역으로 떠오른 팬픽과 웹소설 영역이다. 한혜원 교수는 뉴미디어 매체라는 기술적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여성중심적 콘텐츠가 시작되고 있다고 한다. 또 웹소설이 의미의 고착화나 저자의 절대적인 지위를 거부하고, 텍스트의 복수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글이라는 콘텐츠의 본질을 실현할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
“인간을 배제한 뉴미디어, 인간에 대한 고민이 부재한 콘텐츠는 생명력을 갖기 어렵다.” 이 말을 고려한다면 뉴미디어 콘텐츠 속 ‘인간’을 고민하고, 우리 사회의 큰 담론인 ‘젠더’를 생각하는 시도도 생명력 있는 콘텐츠를 향한 의미 있는 시작으로 볼 수 있다.
단조로운 현실세계에서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앨리스’는 토끼굴로 뛰어든다. 뉴미디어 콘텐츠는 아직 우리 사회에 낯설다. 때론 가벼운 스낵컬처로 치부되고 만다. 하지만, 뉴미디어 콘텐츠는 사회와 문화를 반드시 담는다. 새롭게 등장한 뉴미디어 콘텐츠 세상에서 다양한 시각의 담론을 찾아 나서는 건 사유할 수 있는 뉴미디어 콘텐츠 세상으로 인도하리라 생각된다.
김선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