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던 그 날의 설레임을 잊지 못한다. 내 팔뚝 길이 정도나 될까 말까 한 작은 몸집으로 쌔근쌔근 가쁜 숨을 쉬어대던 딸아이를 바라보며 난 의미를 알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을 참 많이도 흘렸다. 시간이 흐르고 산후 조리원에 들어가서야 아이를 제대로 품에 안게 된 나는 아이를 요리조리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었다. 아내가 한 마디 꺼낸다.
“새끼발가락이 오빠랑 꼭 닮았네”
아버지, 엄마를 닮아 비스듬히 누워있는 내 새끼발가락을 닮은 아이. 그렇게 날 닮은 아이가 생겼다.
사실 새끼발가락과 곱슬머리 정도 닮은 것을 빼고는 딸아이는 엄마를 쏙 빼닮았다. 순도 99% 외탁한 손녀의 모습이 조금은 아쉬우셨는지, 엄마는 내 딸을 부를 때면 농담 반 진담 반 아내의 이름을 붙여 “작은 수미, 작은 수미“ 하곤 하셨다.
나 역시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릴적부터 컴플렉스가 많았던 탓에 아이가 생기면 아내를 닮았으면 했었다. 그래도 내심 서운한 마음은 있다. “애가 아빠 닮았네” 라는 말 몇 번 들어보지 못하고 아이는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났다.
아이가 크면서 신기하게도 잠자고 있던 '아빠' DNA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한번은 아이를 데리고 키즈카페에 간 적이 있다. 한참 동안 새로운 세계를 탐닉하던 딸아이는 숫자와 동물 그림이 가득한 자석블럭 놀이에 관심을 가졌다. 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하며 자리를 잡고 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자석 블럭들을 하나씩 하나씩 오와 열을 맞추었다. 딸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려 전부를 줄 세우고는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장면. 어릴 적부터 물건들이 정리정돈 되어 있어야 마음이 놓였던 내 모습. 그랬다. 아이는 그런 나를 쏙 빼닮아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놀다가 다툼이 생기면 대 여섯 번은 참고나서야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우는 모습, 장난감 가게에 들러서는 마음에 드는 인형을 사달라는 말 대신 인형이 아픈 것 같다며 몇 번을 왔다갔다 망설이는 모습. 동네 산책을 할 때면 유난히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아하여 서슴없이 인사를 건네고, 과자를 먹을 땐 모양이 부서지지 않은 것만 쏙쏙 골라먹는 모습. 엄마가 귀에 닳도록 들려주셨던 어릴 적 내 모습이 딸에게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아내는 볼멘소리로 누구 딸 아니랄까봐 라고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내 편 하나가 생긴 것 같은 묘한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문득 불안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의 작은 것 하나까지 닮아가는 아이를 보면서 아빠라는 존재가 가진 커다란 무게에 어깨와 가슴이 무거워졌다.
내 아이의 처음이 돼주는 사람.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내 작은 손님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사람. 어쩌면 평생 진짜 상어를 보지 못할지도 모를 내 아이에게 TV속 상어가족이 전부는 아님을 알려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나에게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빠 눈 속에 내가 있네“라며, 사랑을 말하는 내 딸
언젠가 길을 걷다가 뒷모습이 꼭 닮은 엄마와 딸을 본적이 있다. 걸음 걸이까지 쏙 빼닮은 모녀를 보며 나를 닮아갈 내 아이를 위해 좀 더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제 엄마를 따라 나를 여보, 오빠라고 부르는 내 딸. 내가 해줬던 말을 기억하는지 나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며 “아빠 눈 속에 내가 있네“라며, 사랑을 돌려주는 내 딸. 나의 하루가, 나의 슬픔이, 그리고 기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내 아이에게 세상은 좀 더 아름다운 곳이라고 알려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더 잘 살아야겠다. 고리타분한 얘기지만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니까.
# 싱어송라이터 조제의 띵곡 : 숨의 숲 – 낙엽을 닮은 (2015년, 싱글 – <낙엽을 닮은>)
(사진=모던보이엔터테인먼트)
2011년 싱글 앨범 <숨>으로 데뷔 한 ‘숨의 숲’은 싱어송라이터 윤기타와 프로듀서 류음으로 구성된 어쿠스틱 혼성 듀오입니다.
시를 쓰는 듯한 아름다운 가사와 섬세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는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치 깨끗한 물이 되는 듯 마음이 정화됩니다. 멤버 윤기타는 최근 방탄소년단의 정규앨범 <Love Yourself 轉 'Tears'> 수록곡 ‘러브 메이즈(Love Maze)’의 작사에 참여했다고 하네요. 숨겨진 보석들의 성장은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이 노래처럼 딸아이가 계절의 신비로움과 영롱한 소리를 닮아 아름답게 자랐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낙엽을 닮은 너의 눈동자를 나는 정말 정말 좋아했었어 가을을 닮은 너의 목소리를 나는 아직 아직 잊지 못했어"
▶ 글쓴이 조제는 촉뮤직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뮤지션으로, 2005년 밴드 필베이의 보컬로 데뷔했다. 현재 밴드 모노크롬카세트의 보컬, 싱어송라이터 조제, 작사가로 활동 중이다. 문예창작학, 와인양조학을 전동하는 등 음악 외에도 와인, 요리, 문학 등 다양한 재능과 색채를 지닌 아티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