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이 끝난 후, 자유민주주의가 최종적으로 승리한 체제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한 환상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2016년 트럼프의 당선에서부터 2024년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일어난 주요 사건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직면한 심각한 위기와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특히 민주주의가 권위주의로 변질되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는 ‘필연의 정치학’과 ‘영원의 정치학’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분석한다.
필연의 정치학은 미래를 현재의 필연적인 연장선으로 간주하며, 대안이 없다는 사고방식을 강조한다. 이 관점에서는 개인의 책임이 부정되고, 삶은 마치 공동묘지의 지정된 자리로 몽유병처럼 걸어 들어가는 과정처럼 여겨진다. 필연성에 따르면, 현재의 상태는 불가피하며, 그 과정에서 개인은 역사의 큰 흐름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시장이 민주주의를 낳고, 민주주의는 행복을 가져온다는 낙관적 서사가 주류를 이루었다. 유럽에서는 민족과 전쟁, 그리고 통합을 통한 번영이 필연적인 진보로 여겨졌다. 반면, 소련은 기술과 혁명이 유토피아를 실현할 것이라는 서사를 내세웠다.
소련이 붕괴한 후, 서구 세계는 필연성의 승리를 선언하며 ‘역사의 종언’을 주장했다. 이에 따라 밀레니엄 세대는 역사를 단절된 채 살아가게 되었으며, 역사적 맥락을 상실한 세대가 되었다. 반면, 러시아 일부는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영광 속에서 새로운 권위를 찾으려 했고, 이는 필연성을 대체할 또 다른 서사를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
영원의 정치학은 필연성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보일 수 있지만, 영원성은 필연성에서 비롯되며, 마치 시체에서 유령이 나오듯 그 자체로 생겨난다. 영원의 정치학은 미래보다는 과거를 이상화하며, 현재를 끝없는 위협과 적으로 가득 채운다. 과거의 자랑스러운 순간들을 반복적으로 불러일으키며, 민족을 지속적인 피해자 위치에 두고 적대감을 조성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과두제를 부추기며 허구적 선전과 조작된 위기를 통해 정당성을 유지한다. 대표적 사례가 2010년대 푸틴이며, 트럼프는 허구적 서사를 현실 정치로 옮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푸틴은 영원의 정치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허구적 이미지를 통해 권력을 잡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해서 위기를 조작했다. 1990년대 말, 대중적 오락물의 영웅 이미지를 빌려 정치 무대에 등장하였고, 테러와 전쟁을 만들어서 자신을 위기의 해결자로 포장했다. 제2차 체첸 전쟁은 지지율을 2%에서 45%로 끌어올렸고, 2000년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허구의 영역에서 신비로운 영웅으로 자리 잡았지만, 2012년 재집권 이후에는 법치를 무시하고 복수와 파괴를 통해 권력을 강화했다.
2012년에 권력 승계를 무너뜨리며 정치적 미래를 없앴고, 그 결과 러시아는 현재를 영원한 위기 속에 묶어두어야 했다. 현재를 영원하게 만들기 위해 끝없는 내외부 위기와 적대감을 조작했다. 서구와 대립을 통해 위기를 증폭시켰는데, 서구를 적으로 설정한 이유는 실질적인 위협 때문이 아니라, 부정선거와 정당성 문제를 외부 적을 통해 숨기기 위함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은 러시아 개입과 허구적 이미지를 통해 미국 민주주의를 교란한 사례다. 러시아 관점에서 그는 구제된 실패자였으며, 미국 체제를 약화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자산으로 여겨졌다. 트럼프는 세 단계 과정을 거쳐 권력을 잡았다. 러시아 마피아와 연계했고 러시아의 돈세탁에 이용되었다. 자신의 사업 실패를 감추고, 성공한 사업가라는 허구적 이미지를 구축했다. 러시아 트롤과 봇이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여론을 조작하고 가짜 뉴스를 확산시켜 트럼프를 지지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러시아가 단순히 한 정치인을 지원했다기보다는 미국 민주주의 체제를 약화시키는 점이 더 중요할 것이다. 이후 러시아는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에도 개입했다.
저자는 지금이야말로 역사를 되돌아볼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돌이켜보는 일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필요한 도구다. 필연성과 영원성이라는 두 가지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책임 있는 정치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투키디데스는 역사 속에서 지도자들 행위와 그들이 내세운 이유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 이병록 예비역 제독·정치학 박사·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