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명품 플랫폼 ‘발란’이 판매자(셀러)들에게 대금을 제때 정산하지 못한 데 이어, 최근에는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려는 정황까지 포착되면서 유통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발란 측은 시스템 점검으로 인한 일시적 지연이라는 입장이지만, 정산 중단, 전 직원 재택근무, 대표와의 연락 두절 등 일련의 행보는 지난해 정산금 미지급 사태 끝에 결국 기업회생을 신청한 ‘티몬·위메프 사태(이하 티메프 사태)’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발란은 지난 24일 일부 셀러들에게 지급 예정이던 정산금을 보류했다. 발란 측은 “재무 검증 과정에서 과거 거래 및 정산 내역의 정합성을 확인할 사항이 발생했다”며 “정산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28일까지 정산액과 지급일정을 공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발란 본사 직원들은 현재 ‘내부 수리’를 이유로 전원 재택근무에 들어간 상태다. 본사 출입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최형록 대표를 포함한 주요 인사들과의 연락도 끊긴 상황이다. 이에 셀러들과 업계는 사측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분위기다.
지난 25일, 정산금을 받지 못한 일부 셀러들이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발란 본사를 방문했으며, 이 과정에서 한 셀러가 직원 컴퓨터 화면에서 ‘기업회생 제출 자료’라는 문서를 촬영한 사진을 커뮤니티에 공유하면서 논란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일부 셀러들은 발란이 이미 대리인을 선임하고 기업회생 신청을 위한 서류를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발란 측은 “확인 중”이라는 입장 외에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발란의 미정산 금액은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수백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셀러들은 수억 원에서 최대 15억 원에 이르는 대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고, 피해 셀러 20여 명은 집단 고소를 준비 중이다.
한 셀러는 “2억 원가량의 정산금을 받지 못했다”며 “28일까지 약속한 정산 공지가 없으면 바로 법적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일부 셀러는 상품을 일시적으로 내리거나 품절 처리하며 추가 거래를 차단한 상태다.
발란은 지난 2월 실리콘투로부터 15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발란은 2022년 이후 공격적인 할인 프로모션과 쿠폰 마케팅으로 고객 유치에 나섰지만, 그로 인해 수익성은 급격히 악화됐다.
2023년 발란의 매출은 전년 대비 56% 감소한 392억 원에 그쳤고, 영업손실은 99억 원에 달했다. 자본총계는 –77억 원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실리콘투는 발란에 75억 원을 선지급했으나, 남은 75억 원은 발란이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실리콘투 역시 “내부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며 곤혹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발란의 행보는 지난해 티몬·위메프 사태와 닮았다. 당시 티몬은 시스템 오류를 이유로 정산을 지연하더니, 결국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티몬 역시 정산 지연 → 임시휴업 → 전 직원 재택 → 기업회생이라는 수순을 밟았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발란 역시 정산금 재산정 공지 → 전 직원 재택 → 대표 연락 두절 → 회생 정황 노출이라는 흐름으로 가고 있어 상황이 심각하다”며 “온라인 명품 플랫폼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때 코로나19 팬데믹 특수로 급성장했던 온라인 명품 플랫폼들은 엔데믹 이후 경쟁 심화와 소비 위축으로 고전하고 있다. 발란, 머스트잇, 트렌비(머트발) 모두 막대한 누적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지난해 기준 발란은 785억 원의 미처리결손금을 안고 있다. 플랫폼 간 할인 경쟁은 역마진 구조를 심화시키며 자금 흐름을 더욱 악화시켰다.
실제로 명품 플랫폼 카드 결제액은 2022년 대비 2023년 59% 급감한 3758억 원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외형 확장과 할인 경쟁이 부른 파국”이라며 “명품 플랫폼 업계 전반의 구조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