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록의 책을 통해 세상 읽기] 김지윤의 '선거는 어떻게 대중을 유혹하는가'
대통령 선거 정국으로 접어들었다. 선거란 결국 ‘만남’이다. 직접 눈을 맞추고, 악수하며 “요즘 어떻게 사세요?”라고 묻는 순간, 후보자는 비로소 사람의 얼굴을 갖는다. 그 짧은 접촉만으로도 유권자의 마음속 비호감 지수는 낮아진다. 정치는 신뢰의 영역이다. 그러나 후보는 단 한 명, 유권자는 수천만 명이다. 만남이 부족한 만큼, 전략이 필요하다.
정치 캠페인에서 정책의 완성도보다 중요한 것은 종종 후보가 얼마나 ‘대통령다워 보이는가?’다. 특히 본선에서의 TV 토론회는 유권자들의 지지 후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판단을 재확인하거나 응원하는 무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내용보다 분위기, 논리보다 인상이 중요해진다. 누군가는 토론 그 자체보다 이후 방송사 시사평론가들의 해설이 여론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도 말한다. 결국 국민은 '정책'이 아니라 '사람'을 고르는 것이다.
부정적(네거티브) 전략은 많은 영향을 미친다. 2004년 미국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 존 케리는 베트남전 훈장을 5개나 받은 전쟁 영웅이었다. 부시 후보는 주 방위군 복무를 통해 베트남전을 피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러나 공화당의 칼 로브는 전쟁 영웅 이미지를 오히려 비틀었다. “이라크 전쟁을 찬성했다가 반대한 사람, 믿을 수 있는가?”라는 식이다. 가장 강한 지점을 뒤집어, ‘줏대 없는 정치인’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나라를 지켜야 할 대통령이 불확실하다면 국민이 불안하다는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이었다. 전우를 동원한 비난, 심지어 전공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까지 나왔다. 강점은 그렇게 공격의 지점이 된다.
반대로 오바마는 부정적 전략에 대응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택했다. “희망”과 “변화”라는 추상적 구호만을 되풀이했다. 다소 모호하고 알맹이는 없지만 듣기 좋고 믿고 싶은 말이었다. 그는 흠집 내기에 정면 대응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존재 자체를 무시한 듯한 태도를 유지했다. 대중의 감정과 이미지의 흐름을 설계한 전략은 결국 효과를 보았다.
프레임 선점은 또 다른 강력한 무기다. 빌 클린턴의 유명한 구호, “It’s the economy, stupid!”는 그 상징이다. 클린턴은 경제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부시 대통령의 전략을 선제적으로 차단했다. 이후 어떤 주장을 내놓아도 변명처럼 들리게 만든 것이다. 그는 시사 토론 대신 심야 토크쇼에 출연해 색소폰을 불며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켰고, 사생활 논란에는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고 가족적인 이미지로 우회했다. 대중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사실을 꿰뚫은 전략이었다.
2000년대 들어와 선거 전략은 ‘선택과 집중’으로 바뀐다. 공화당의 칼 로브는 유권자 전체를 상대로 한 선전 대신, 이른바 ‘중간 지대’ 유권자에게 집중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종교, 소비 습관, 미디어 취향 등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유권자를 정밀 분석하고, 그에 맞는 선거운동을 했다.
오바마는 전국적 인지도인 힐러리를 상대하기 위해 대조적인 이미지인 개혁과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신선한 바람으로 포장했다. 대선에서 칼 로브의 맞춤형 전략을 정교하게 적용했다. ‘한 사람을 위한 맞춤형 문장’을 만들고, 유권자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며 메시지를 수정했다. 평균 일주일 단위로 모델을 업데이트해 유권자 반응에 빠르게 대응했다.
2008년에는 인터넷이 유권자를 연결하고 동원하고 끌어내려 한 정도에 그쳤다. 2012년에 스마트폰과 다양한 앱이 개발되면서, 소통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더 전격적으로 되었다. 오바마 재선 캠프는 더욱 대담하게 중도층보다도 약하게 공화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정조준했다. 공화당의 낙태나 여성 정책에 불만을 가진 보수 여성 유권자에게는 민주당의 여성 정책만을 강조했다. 이른바 ‘하나만 판다’ 전략이었다. 500여 개의 취향 저격 광고를 제작해 지역과 개인에 맞게 배포했고, 한 가족에게 보내는 선거 홍보물조차 모두 내용이 달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기술과 전략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선거는 여전히 사람의 일이다. 가장 확실한 유권자는 어쩌면 내 휴대전화에 저장된 그 이름일 수 있다. 한 통의 전화, 한 줄의 메시지, 한 번의 대화가 TV 광고 10번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정치는 머리 싸움이면서, 머릿수의 싸움이다. 대통령을 만드는 것은 결국 말과 손이다. 악수 하나, 눈 맞춤 하나, 그리고 단 하나의 맞춤형 문장. 선거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글: 이병록 예비역 제독·국민주권전국회의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