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식이요법이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치매 예방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노화연구기관인 벅 연구소(Buck Institute for Research on Aging) 연구진은 1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타볼리즘(Nature Metabolism)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뇌 내 당분을 조절하는 식이요법이 치매를 유발하는 유해 단백질 축적을 억제하는 강력한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에 따르면, 탄수화물은 체내에서 글리코겐(glycogen)이라는 형태의 당분으로 변환돼 뇌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글리코겐이 과잉 존재할 경우, 뇌에서 알츠하이머 주요 원인 물질 중 하나인 ‘타우(tau)’ 단백질과 결합해 이를 제대로 분해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타우 단백질과 또 다른 단백질인 아밀로이드(amyloid)가 서로 응집하면서 뇌에 플라크와 엉킴을 형성하고, 이것이 알츠하이머 증상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한다.
연구진은 과도한 글리코겐을 분해하는 효소 ‘글리코겐 포스포릴레이스(GlyP)’의 활성이 높아질 경우 타우 단백질의 축적을 억제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는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것이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공동 저자인 판카지 카파히(Pankaj Kapahi)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뇌 속 ‘숨은 당분 코드’를 이해하는 것이 치매 예방의 열쇠가 될 수 있다”며 “식이요법을 통한 뇌 내 당 조절이 조기 치매 대응을 위한 유망한 치료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초파리를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글리코겐이 제대로 분해되지 않으면 뇌세포가 산화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는 기전을 상실해 사멸한다는 점도 확인됐다. 반면, GlyP 효소의 활성을 회복시킬 경우 뇌세포의 손상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연구진은 이와 함께 체중 감량 치료제로 각광받는 GLP-1 계열 주사제(일명 ‘슬리밍 주사’)가 치매 예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GLP-1은 식후 위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식욕을 억제하고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데, 이는 식이 제한과 유사한 효과를 유도해 뇌 내 당분 조절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연구팀은 치매의 주요 위험 요소들이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만큼, 이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 생활 습관을 조기에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영국 성인의 약 6%, 즉 200만 명 가량이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하는 저탄고지 또는 케토제닉 식단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식단은 빵, 파스타, 쌀 등 에너지 밀도가 높은 탄수화물을 배제하고 지방과 단백질 위주로 식단을 구성해 체내를 ‘케토시스(ketosis)’ 상태로 유도함으로써 지방을 주 에너지원으로 쓰게 만든다.
다만, 일부 연구에서는 저탄수화물 식단이 심혈관 질환 등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앞서 지난해 7월 발표된 세계적 연구에서는 콜레스테롤 수치와 시력 저하를 포함한 14가지 생활습관 요인이 치매의 절반 가까이를 설명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 바 있다. 이 연구는 란셋(Lancet)에 실렸으며, 치매 예방에 있어 생활습관 개선이 과거 어느 때보다 실현 가능해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 알츠하이머병은 영국 내 치매의 가장 흔한 유형으로, 약 98만2천 명이 앓고 있다. 초기에는 기억력 저하, 사고력 저하, 언어 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악화된다. 알츠하이머리서치UK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7만4,261명이 치매로 사망해 치매가 영국의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