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설아 기자] 꿈의 내용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렘수면행동장애가 파킨슨병이나 치매로 진행하지 않은 경우에도 장기적으로 기억력과 주의력 등 인지기능을 서서히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정신건강의학과 윤인영 교수 연구팀이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 환자를 평균 7.7년 추적 관찰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26일 밝혔다.
연구팀은 최소 5년 이상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 상태를 유지하면서 파킨슨병·치매 등 신경퇴행성질환으로 진행하지 않은 환자 162명을 대상으로 장기 인지 변화를 분석했다. 렘수면행동장애는 수면 중 소리 지르기, 주먹질, 발차기처럼 꿈의 내용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질환으로, 파킨슨병이나 치매의 가장 강력한 전조 증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동안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 환자의 장기 인지기능 변화를 체계적으로 추적한 연구는 소수에 그쳤고, 대부분 2~4년 짧은 기간만 관찰돼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총 318회의 신경심리검사 결과를 토대로 인지기능을 ▲주의력·작업기억력 ▲기억력 ▲실행기능 ▲시공간기능 ▲언어기능 등 5개 영역으로 나눠 분석했다. 각 검사는 동일 연령·성별·학력 집단 평균을 0점으로 둔 ‘z-점수’로 환산했으며, z-점수가 -1.5 이하로 떨어지면 유의미한 인지 저하로 판단했다. 그 결과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 환자들은 특히 주의력·작업기억력과 기억력 영역에서 점진적이지만 일관된 하락을 보였다. 처리속도와 주의력을 보는 ‘숫자-기호 연결(Digit Symbol)’ 과제의 경우 매년 평균 z-점수가 0.084씩 감소해 가장 가파른 하락을 나타냈고, 언어 기억력은 매년 0.054, 시각적 기억력은 매년 0.037씩 떨어져 시간이 지날수록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의 저하에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성별에 따른 차이도 확인됐다. 남성 환자 116명은 주의력·작업기억력, 기억력, 실행기능 등 여러 인지 영역에서 광범위한 저하를 보인 반면, 여성 환자 46명은 숫자열을 따라 외우는 ‘숫자열 기억(Digit Span Forward)’과 ‘숫자-기호 연결’ 두 항목에서만 제한적인 감소를 보였다. 윤인영 교수는 “여성은 뇌 손상 후 회복력이 상대적으로 높거나, 질병을 일으키는 비정상 단백질이 뇌에 축적되는 속도가 더 느릴 가능성이 있다”며 “성별에 따라 다른 인지 저하 양상이 관찰된 만큼 성별 특성을 고려한 모니터링 전략과 맞춤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또 10년 이상 렘수면행동장애만 보이고 신경퇴행성질환으로 진행하지 않은 ‘장기 안정군’ 33명을 별도로 분석한 결과, 이들 역시 전체 환자군과 비슷하거나 일부 검사에서는 더 가파른 인지 저하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장기 안정형 렘수면행동장애 환자는 신경퇴행 속도가 더 느릴 것”이라는 기존 가설과는 다른 결과로, 겉으로는 병이 진행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뇌 속에서는 서서히 신경퇴행 변화가 진행되고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제1저자인 홍정경 교수는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 환자에서 파킨슨병이나 치매 같은 신경퇴행성질환으로 이어지지 않았더라도 인지기능 저하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연구로 명확해졌다”며 “렘수면행동장애 진단을 받았다면 증상이 안정적으로 보이더라도 정기적인 인지검사와 진료를 통해 변화를 꾸준히 추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