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설아 기자] 분당서울대병원이 위암 면역관문억제제 효과가 남녀에서 다르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으며, 향후 위암 면역항암치료 가이드라인에 ‘성차 면역학’을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 연구팀은 29일 위암 환자 대상 면역관문억제제와 PD-L1 발현 양상을 분석한 결과, 같은 약제라도 남성에게서 생존율 개선 효과가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를 이끈 김나영 교수 연구팀(제1저자 이정환 전문의)은 위암 환자에서 면역관문억제제 치료 성과와 그 주요 예측 지표로 활용되는 PD-L1(programmed death ligand-1) 발현 양상이 남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면역관문억제제는 암세포가 T림프구의 공격을 피해가기 위해 활용하는 면역 회피 신호, 이른바 ‘면역관문’을 차단하는 면역항암제다. 정상적인 면역 체계에서는 T림프구가 종양세포를 인식해 제거하지만, 암세포는 표면에 PD-L1을 발현시켜 별다른 위협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는 전략을 쓴다. PD-L1/PD-1 면역관문억제제는 암세포의 PD-L1과 면역세포의 PD-1 결합을 차단해, T림프구가 다시 활성화돼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기존 세포독성항암제나 표적항암제와 작용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러한 면역관문억제제는 수술·항암·방사선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난치성 암에서 새로운 치료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고, 전이성 위암이 대표적 적용 분야로 꼽힌다. 국가검진 확대와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 보편화로 전체 위암 치료 성적은 향상됐지만,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된 고병기 위암의 예후는 여전히 좋지 않다. 최근 들어 난치성 위암 환자에게 면역항암제와 항암화학요법을 병용했을 때 장기 생존을 기대할 수 있는 사례들이 보고되며, 면역관문억제제가 ‘완치까지 바라볼 수 있는 치료 옵션’으로 거론되고 있다.
다만 면역관문억제제는 환자별 반응 차이가 매우 큰 것으로 알려져 있어, 누가 치료 이득을 볼지 미리 가려낼 수 있는 선별 기준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PD-L1 발현 수치가 높을수록 치료 효과가 좋다는 가설이 약제 기전과는 잘 들어맞지만,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이 지표만으로 치료 반응을 일관되게 설명하기 어려워 보조 기준으로 활용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2018~2024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PD-L1 면역조직검사를 받은 위암 환자 468명을 대상으로 남녀별 임상 경과와 병리·분자생물학적 특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면역관문억제제의 효과와 PD-L1 발현 패턴이 남성 환자와 여성 환자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남성 환자군에서는 PD-L1 양성 판정을 받고 면역관문억제제를 투여한 그룹의 중앙 생존기간이 1314일로, 같은 기준에서 약제를 투여하지 않은 비투여군(950일)보다 의미 있게 길었다. 반면 여성 환자에서는 치료군과 대조군 사이 생존기간 차이가 사실상 없었다. PD-L1 양성 여성 환자 가운데 면역관문억제제를 투여받은 그룹의 중앙 생존기간은 897일, 비투여군은 890일로 유의한 차이가 통계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 같은 결과의 배경에 위암의 병리학적·분자생물학적 성차가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남성에서는 PD-L1 양성 위암이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pstein-Barr virus, EBV) 감염을 동반하거나 위의 아래쪽인 전정부에 발생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두 요인은 모두 활발한 면역 반응과 연관돼 있어 면역관문억제제 치료 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시됐다.
반면 여성 환자에서는 PD-L1 양성 위암과 EBV 감염, 전정부 위암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이 관찰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여성 위암의 경우 PD-L1/PD-1 축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면역 억제 기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단일 면역관문 억제 전략만으로는 충분한 치료 이득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추정했다.
김나영 교수는 “남성과 여성의 면역 체계는 기본 구조부터 반응 양상까지 여러 측면에서 차이를 보인다”며 “위암에서 면역관문억제제를 사용할 때에도 동일한 기준을 일괄 적용하기보다, 성차 면역학을 고려한 보다 세밀한 치료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연구는 단일 기관 분석이라는 한계가 있는 만큼, 향후 대규모 다기관 데이터를 축적해 남녀 모두에게 최적화된 위암 면역항암치료 가이드라인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의 ‘성차기반 소화기계질환 진단·치료기술 개선 및 임상현장 적용 사업’과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 지원 사업의 연구비를 받아 수행됐다. 연구 결과는 대한암학회가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Cancer Research and Treatment(CRT)' 최신호 온라인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