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최성민 기자] 교통사고 현장에서 명함을 건네거나 자신의 연락처를 남겼다는 이유로 법적 의무를 다했다고 믿는 운전자들이 많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 판례와 하급심의 판결 기조를 분석해보면, 이러한 안일한 판단이 뺑소니처벌의 가중 사유로 작용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사법부는 사고 운전자가 현장을 이탈함으로써 피해자의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을 방치했는지, 사고 야기자가 누구인지 확정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했는지를 엄격히 따진다. 단순히 인적 사항을 제공했다는 사실만으로 '도주의 고의'가 조각되지 않는 것이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도주치상죄가 성립하지 않으려면 사고 운전자는 반드시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에 따른 조치를 취해야 한다. 판례에 따르면 피해자가 상해를 입은 상태에서 명함만 주고 현장을 떠난 행위는 '구호 조치'를 결여한 것으로 간주된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즉시 응급처치가 필요 없다고 말했더라도, 운전자가 객관적으로 상해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이탈했다면 이를 뺑소니처벌 대상인 도주로 규정한다.
현장에서 피해자가 "사고가 크지 않으니 그냥 가셔도 된다"라고 말했더라도 안심해서는 안 된다. 특히 피해자가 어린아이이거나, 당황한 상태에서 신체적 이상을 인지하지 못한 채 한 발언은 법적 효력이 제한적이다. 추후 피해자가 병원에서 진단서를 발급받아 경찰에 신고할 경우, 사법부는 운전자에게 '사고 후 미조치'의 책임을 묻는다. 피해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보호자에게 연락하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등의 적극적 조치 없이 현장을 떠나는 것은 뺑소니처벌 실형 가능성을 극도로 높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재판부는 운전자의 주관적 진술보다 차량의 파손 상태, 블랙박스에 녹음된 충격음, 사고 직후 운전자의 주행 패턴 변화 등 객관적 정황에 주목한다. "음악 소리가 커서 몰랐다"거나 "방지턱인 줄 알았다"는 변명은 디지털 포렌식과 도로교범 분석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오히려 사고를 인지했음에도 고의로 회피하려 했다는 미필적 고의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어 양형에 악영향을 미칠 뿐이다.
결국 뺑소니처벌의 핵심은 사고 직후 '누가 봐도 구호의 의지가 있었는가'를 입증하는 데 있다. 최근 검찰 통계와 경찰청의 집중 단속 현황을 살펴보면 뺑소니 검거율은 90%를 상회하며 도주 과정에서 음주나 무면허 등 추가 범행이 결합될 경우 초범이라도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과거의 관행처럼 적당히 합의로 무마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대한변협 등록 형사법 전문 변호사인 로엘 법무법인 이태호 대표변호사는 “사고 차량 운전자의 구호 의무는 즉각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사고 직후의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장을 이탈한 뒤 뒤늦게 수사 기관에 명함을 줬다고 주장하는 것은 도주 후의 사후 수습에 불과하며 이러한 변명으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라고 조언했다.
이어 “뺑소니처벌을 둘러싼 갈등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사고 당시 피해자와 나눈 대화, 주변 목격자의 진술, 현장을 이탈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GPS 기록 등 객관적인 증거를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또한 도주의 고의가 없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몰랐다'고 우길 것이 아니라, 당시 도로 상황과 차량 상태를 근거로 사고 인지 가능성이 낮았음을 공학적으로 증명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