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경호 기자] 예금금리는 단순히 고객을 끌어오기 위한 상품 가격이 아니다. 은행이 얼마의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그 자금을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경영 변수다.
금리 경로가 불확실하고, 주식시장과 금융상품 간 자금 이동이 커지는 환경에서는 예금금리 경쟁도 은행의 자금조달 리스크를 읽는 신호가 된다.
최근 금융시장에서 예금의 의미는 예전보다 복잡해졌다. 예금은 은행의 가장 기본적인 조달 기반이지만, 시장금리와 투자심리 변화에 따라 언제든 다른 금융상품으로 이동할 수 있다.
예금 기반이 약해지면 금융기관은 기존 수신을 지키기 위해 금리를 올리거나, 은행채 등 시장성 조달로 부족한 자금을 메워야 한다. 이때 조달비용이 높아지면 수익성은 물론 대출 공급 여력에도 부담이 생긴다.
토스인사이트 보고서는 예금금리 경쟁을 은행의 비즈니스모델과 신용시장 스트레스가 결합된 전략적 가격결정으로 해석했다. 분석 대상은 2012년 1분기부터 2023년 2분기까지 국내 예금취급기관의 기관별 예금금리와 재무자료다. 예금금리 경쟁 강도는 1년 만기 예금금리와 CD금리 간 차이인 예금금리 스프레드로 측정했다.
평상시에는 예금 기반이 풍부한 기관일수록 예금금리 경쟁에 소극적이었다. 예금/부채 비율이 10%p 높아질 경우 예금금리 스프레드는 약 4bp 낮아졌다. 안정적인 고객 기반과 예금 프랜차이즈를 갖춘 기관은 경쟁기관이 금리를 올리더라도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금 유입을 위해 높은 비용을 치를 필요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출자산 비중이 높은 기관은 예금금리를 더 적극적으로 조정했다. 대출/자산 비율이 10%p 높아질 경우 예금금리 스프레드는 약 3bp 상승했다. 대출을 유지하거나 늘리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예금 조달이 필요하고, 예금 유입의 한계가치가 높기 때문에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할 유인이 커진다.
여기까지만 보면 예금금리 전략은 단순해 보인다. 예금이 많은 기관은 금리를 덜 올리고, 대출이 많은 기관은 금리를 더 올린다. 그러나 신용시장 스트레스가 높아지면 이 관계는 달라진다. 보고서는 AA등급 회사채와 국고채 간 신용스프레드를 시장 스트레스 지표로 활용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예금금리 산정 방식이 바뀐다는 임계효과를 확인했다.
예금 기반이 풍부한 기관은 신용스프레드가 약 115bp를 넘어서면 오히려 예금금리를 더 적극적으로 올리는 방향으로 전환됐다. 평상시에는 강점이던 예금 기반이 스트레스 국면에서는 방어해야 할 기반으로 바뀌는 것이다. 시장 불안이 커지면 예금 이탈을 막고 유동성 지표를 관리하기 위해 예금 프랜차이즈가 큰 기관도 금리 인상 압력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대출 비중이 높은 기관은 신용스프레드가 약 71bp를 넘어서면 예금금리 경쟁을 확대하던 효과가 약해지거나 반전됐다. 신용위험이 높아지는 국면에서는 비싼 예금을 끌어와 대출을 늘리는 전략의 매력이 떨어진다. 조달비용과 신용위험, 자본부담이 동시에 커지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대출 확대를 위해 예금 경쟁에 나섰던 기관도 스트레스 국면에서는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
이 결과는 예금금리를 기준금리나 업권 평균 수신금리만으로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시장금리 환경에서도 예금 의존도, 대출 비중, 시장성 조달 여건, 신용스프레드 수준에 따라 금융기관의 예금금리 전략은 달라질 수 있다. 은행과 비은행을 나누는 업권 구분보다, 각 기관이 어떤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운용하는지가 더 중요한 변수로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금금리를 단기 고객 유치 수단으로만 보면 위험하다. 금리를 올려 수신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그만큼 조달비용도 높아진다. 고금리 예금이 특정 시기에 대거 만기를 맞으면 재조달 부담이 커질 수 있고, 신용스프레드가 확대된 상황에서는 시장성 조달 비용도 함께 상승한다. 예금금리 경쟁이 수익성 악화와 유동성 리스크로 이어지는 경로를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금융기관은 예금금리를 수신상품 가격이 아니라 조달비용, 유동성 리스크, 대출공급 여력을 함께 조율하는 경영 변수로 봐야 한다. 신용스프레드가 임계 구간에 접근할 때는 단순히 금리를 올릴지 말지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예금 이탈 가능성, 고금리 예금 만기 구조, 대출자산 조정 가능성, 시장성 조달 비용을 함께 점검해야 한다.
정책당국도 업권 평균 수신금리만으로 예금금리 경쟁을 판단하기 어렵다. 기관별 예금 의존도, 대출 비중, 예금금리 스프레드, 고금리 예금 만기집중도, 신용스프레드 수준을 함께 봐야 한다. 같은 시장 불안 속에서도 어떤 기관은 예금 방어를 위해 금리를 올리고, 어떤 기관은 대출 확대를 줄이며 금리 경쟁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예금금리 경쟁은 겉으로는 숫자 몇 bp의 차이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은행의 조달구조, 대출전략, 시장 스트레스, 유동성 관리가 모두 들어 있다. 예금금리를 읽는다는 것은 은행이 어떤 비용으로 돈을 조달하고, 어느 정도까지 대출을 이어갈 수 있는지를 읽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