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선 단 2척만이 77개 섬 담당”…섬 주민 건강권, 운항 일정·날씨가 ‘볼모’
경남·충남 월 1회 진료…전남 섬은 연 4회 불과
“화려한 통합 보다 섬 어르신 환자 부터 살펴야”
[더파워 호남취재본부 손영욱 기자] 박재선 전남광주시의회 의원이 8일 열린 본회의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전남 섬 지역의 처참한 의료 현실을 강도 높게 질타했다.
전국 최초 해양치유센터를 자랑하는 완도에서 정작 섬 주민들은 병원 선이 오는 날만을 기다리며 수개월씩 진료를 미루고, 응급환자는 생사의 골든타임을 캄캄한 바다 위에서 허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 의원은 이날 “남을 치유하는 섬에서 정작 우리 섬 주민들은 아플 때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며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완도를 비롯한 전남 섬마을 주민들이 의료기관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병원선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현실을 고발했다.
병원선이 들어오는 날이면 여든이 넘은 어르신들이 지팡이를 짚고 선착장에 나와 몇 시간씩 줄을 서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람이 불거나 기상이 악화돼 배가 뜨지 못하면 진료 일정은 또다시 두세 달 뒤로 밀린다. 주민들에게 병원 진료는 기본적인 권리가 아니라 날씨와 뱃길, 선박 운항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기약 없는 행운’으로 전락했다.
박 의원은 “병원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병원이 와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삶”이라며 “섬 주민들의 건강권을 언제까지 날씨와 배편에 맡겨둘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특히 공중보건의 감소로 섬 지역 의료 기반은 사실상 붕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중보건의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줄면서 보건지소마저 하나둘 문을 닫고 있으며, 야간에 주민이 쓰러질 경우 응급 이송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래서 섬에서는 밤이 가장 무섭다”며 “누군가 쓰러져도 응급의료의 골든타임이 캄캄한 바다 위에서 속수무책으로 흘러가 버린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상황을 반복해서 겪은 섬 지역 어르신들은 결국 “아파도 참는다”고 말하고 있으며, 치료를 미룬 작은 질환이 중증 질환으로 악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전남의 ‘바다 위 진료실’인 병원선은 단 2척에 불과하다. 이 2척이 9개 시·군, 77개 섬을 나눠 담당하고 있어 주민들의 건강과 생명이 사실상 두 척의 운항 일정에 매달려 있는 실정이다.
박 의원은 이를 두고 “치유의 섬, 전남·광주라는 화려한 이름 뒤에 감춰진 또 다른 얼굴”이라며 “섬 주민의 건강권이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졌느냐고 묻는다면 누구도 그렇다고 답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섬 지역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두 가지 대책도 제시했다.
먼저 병원선 운항 계획을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같은 제도와 같은 병원선을 운영하는 경남과 충남의 섬 주민들은 한 달에 한 차례 진료를 받는 반면, 전남 섬 주민들은 1년에 네 차례 정도밖에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배가 없어서가 아니라 어느 섬에 얼마나 자주 갈 것인지 제대로 설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의료기관이 단 한 곳도 없는 섬을 최우선으로 방문하도록 운항 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공중보건의 배치를 기다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의사들이 병원선에 순환 근무하거나 승선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진료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두 번째로는 건강검진을 놓친 섬 주민들을 행정이 직접 파악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의원은 “검진을 몇 해째 거르고 있는 어르신이 몇 명인지 행정이 답할 수 있어야 한다”며 “마을별 미검진자 명단을 보건소가 직접 관리하고, 병원선이 들어오는 날 검진 인력도 함께 투입해 현장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아파도 참고 견디는 섬 주민들이 병을 키우기 전에 질환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라는 주장이다.
박 의원은 향후 전남·광주 통합특별시 논의와 관련해서도 “시민들에게 드릴 첫 번째 약속은 화려한 청사진이나 거대한 신청사가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장 먼 섬의 가장 아픈 어르신에게 닿는 따뜻한 손이 통합특별시의 첫 번째 약속이어야 한다”며 “남을 치유해 온 우리 섬이 이제는 그곳에 사는 주민부터 먼저 치유받는 곳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섬 주민의 생명과 건강을 외면한 채 치유와 통합을 외치는 것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며 “섬 주민도 육지 주민과 똑같이 제때 진료받고, 위급할 때 구조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치유의 섬’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전남·광주의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손영욱 더파워 기자 son4909@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