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음(默吟)의 회화 – 말 없는 시, 보이지 않는 언어”
.“침묵으로 말하는 회화, 사유의 공간을 열다”
사진 = 갤러리 자인제노 제공 / 묵음(黙吟 Poetry with Silence)25-08-01_ Acrylic and Silica Sand Mounted on Linen_ 117 x 91cm_ 2025
[더파워 이강율 기자] 도시의 소음과 과잉된 시각적 자극 속에서, 화가 김정환은 먹의 울림과 여백의 고요함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회화를 펼쳐낸다. 오는 8월 26일부터 9월 10일까지 갤러리자인제노에서 열리는 개인전 《고요한 침묵 속에서》는 작가가 수년간 탐구해온 흑백 회화의 세계를 집약해 보여주는 자리다.
김정환의 화면을 가득 채운 검은 먹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와 비존재, 발화와 침묵이 교차하는 공간이며, 시간의 침윤 속에서 숙성된 퇴묵(退墨)의 깊은 호흡이다. 반면 흰 여백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불교적 ‘공(空)’의 충만, 곧 비워짐으로써 채워지는 세계를 상징한다. 두 요소는 대립이 아닌 상생으로 맞물리며, 관객은 그 긴장과 균형 속에서 동양 사유와 서구 조형 언어가 만나는 현대적 회화를 체험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무엇보다 침묵의 미학을 강조한다. 침묵은 부재가 아니라 내면의 소리이며,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언어이다. 김정환은 이를 ‘묵음(默吟)’이라 부른다. 말 없는 시(詩), 보이지 않는 언어로서의 묵음은 화면 위에서 존재와 무(無)의 철학적 울림으로 전환된다. 먹의 번짐과 흔적은 통제에서 벗어난 자연의 작용으로, 삶의 우연과 무상(無常)을 드러내는 동시에 관조와 수행의 시간을 선사한다.
작가는 서예적 기운과 수행적 과정을 회화로 확장하며, 단순한 흑과 백을 넘어 형과 무형, 어둠과 빛, 유와 무라는 근원적 질문을 제기한다. 그의 작업은 동양의 정신성과 서구의 미니멀리즘적 형식을 아우르되, 물성의 탐구를 넘어 존재론적 차원으로 나아간다. 그 결과, 관객은 화면 속에서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 사유와 감각의 경계를 오가는 깊은 울림을 체험하게 된다.
사진= 갤러리 자인제노 제공 / 묵음(黙吟 Poetry with Silence)25-08-07_ Acrylic and Silica Sand Mounted on Linen_ 162 x 130cm_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