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승에서 우승한 최가온이 금메달을 손에 들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더파워 이설아 기자] 한국 설상 종목 첫 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 최가온(18·세화여고) 뒤에는 10년 넘게 설상 종목을 물밑에서 지원해온 ‘키다리 아저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있었다. 스키 애호가로 알려진 신 회장은 협회 회장사인 롯데를 통해 설상 인프라를 키우는 한편, 유망주에게는 수술비까지 책임지는 전폭적 지원으로 ‘밀라노 기적’의 발판을 놓았다.
13일 롯데그룹과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에 따르면 2014년부터 현재까지 설상 종목에 투입된 후원 규모는 300억원을 웃돈다. 롯데는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 회장사로 나서면서 포상 제도 확대, 해외 전지훈련 지원, 최신 장비 도입, 설상 강국과의 업무협약(MOU) 등 설상 전체 판을 키우는 데 집중해왔다.
이번 대회에서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금메달을 목에 건 최가온은 롯데 스키앤스노보드팀 소속이다. 최가온은 13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라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0.25점을 기록하며 한국 스키·스노보드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 설상 종목 전체를 통틀어도 첫 금메달이다.
최가온과 신 회장의 인연은 위기 속에서 더 굵게 이어졌다. 최가온은 2024년 스위스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하프파이프 경기 중 허리 부상을 입어 수술대에 올랐다. 당시 16세였던 최가온에게는 선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큰 고비였다. 이때 신 회장이 나섰다. 수술비 7000만원을 전액 지원하고 재활 과정 전반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한 것이다. 최가온은 신 회장에게 손편지로 감사 인사를 전하며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는 각오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약속이 2년 뒤 금메달로 현실이 됐다.
신동빈 롯데 회장
롯데의 지원은 개인 선수 차원을 넘어 설상 종목 전체 체질 개선으로 이어졌다. 롯데는 2014년부터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 회장사를 맡아 저변 확대를 위한 지원을 지속했다. 신 회장은 2014년 11월부터 2018년까지 협회장을 직접 맡으며 포상금 제도 손질에 나섰다. 올림픽·세계선수권·월드컵 등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선수뿐 아니라 4~6위 선수까지 포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꿔 선수들의 도전 의지를 끌어올렸다.
기량 향상을 위한 환경 조성에도 공을 들였다. 설상 종목 강국인 미국·캐나다·핀란드 스키협회와 업무협약을 맺어 기술·정보 교류를 늘리고, 전지훈련과 국제대회 참가를 꾸준히 후원했다. 신 회장 본인도 대학 시절 스키 선수로 활약한 스키 마니어로, 설상 종목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 필요성을 강조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유망주 발굴과 육성을 위해 2022년에는 ‘롯데 스키앤스노보드팀’을 창단했다. 최가온을 비롯한 10대 유망주들을 대거 영입해 후원금과 국내외 개인 훈련비, 각종 장비를 지원하고, 멘탈 트레이닝·영어 학습·건강 관리 등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까지 제공하고 있다. 훈련 스케줄 관리, 비자 발급, 국내외 대회 참가 조율 등은 전담 매니저가 맡아 선수들이 경기력 향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도 롯데는 현지 베이스캠프를 꾸려 선수단을 지원했다. 이탈리아 현지에는 장비 전문가 2명, 체력 지원 스태프 6명, 코치 3명, 행정 인력 4명 등으로 구성된 지원팀이 파견돼 각종 장비 점검, 컨디션 관리, 이동·운영 지원 등을 맡았다. 최가온뿐 아니라 한국 스노보드의 ‘트리플 메달’도 이런 뒷받침 속에서 나왔다.
이번 대회에서 남자 평행대회전 은메달을 목에 건 김상겸(37·하이원), 스노보드 여자 빅에어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유승은(18·성복고) 역시 롯데와 협회의 지원 아래 기량을 꽃피운 선수들이다. 협회는 기존에 손질한 포상금 규정에 따라 최가온에게 3억원, 김상겸에게 2억원, 유승은에게 1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롯데는 금·은·동을 합작한 세 선수에게 축하 서신과 함께 별도의 선물도 전달할 계획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성과를 두고 “선수들의 재능과 노력, 부모의 헌신, 그리고 롯데그룹 후원을 받은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의 지원이 맞물린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설상 불모지로 불리던 한국 스키·스노보드가 한 대회에서 금·은·동을 모두 수확한 데에는 장기간 꾸준히 이어진 민간의 통 큰 투자와 ‘꿈나무’ 시스템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신동빈 회장은 이번 대회에서 1·2호 메달을 안긴 김상겸, 유승은 선수에게 이미 포상금과 축하 서신을 보냈고, 한국 설상 첫 금메달을 품에 안은 최가온에게도 별도의 축하 메시지와 선물을 전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 회장은 유승은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유승은 선수는 한국 스노보드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며 “잇따른 부상을 이겨내고 따낸 메달이라 더욱 값지다. 앞으로도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가온의 금빛 점프와 한국 설상 종목의 첫 금·은·동 메달은 우연이 아니다. 선수와 가족, 지도자 그리고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자처한 신동빈 회장과 롯데그룹의 장기 지원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한국 겨울 스포츠 후원 모델의 방향성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