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재무부 바이백 확대에도 10년물 4.74%·30년물 5.27%…연방부채 40조달러 돌파
일본 10년물도 30년 만에 최고…금리 인상 기대에도 엔화는 다시 159엔대
미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 4분의 1 AI 관련…아마존·알파벳 외화채 발행 확대
금·비트코인 급등한 반면 월마트 주가 9.2%↓…고금리 부담 실물경제로 번질지 주목
[더파워 이경호 기자] 세계 금융시장에서 다시 ‘돈의 가격’이 가장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장기 국채를 직접 사들이며 시장 안정에 나섰지만 장기금리는 오히려 다시 올라섰고, 일본에서도 10년물 금리가 30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여기에 인공지능(AI) 투자를 확대하는 빅테크들이 대규모 회사채 발행에 나서면서 자금 수요가 국채에서 민간 크레딧 시장으로 동시에 번지고 있다. 정부도 돈을 빌리고 기업도 돈을 빌리는 상황에서 채권 투자자가 요구하는 금리 자체가 높아지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연합뉴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최근 4.74%까지 올라 한 주 동안 6bp 상승했고, 30년물은 5.27%까지 높아졌다. 미국 재무부가 장기채 바이백 규모를 최소 두 배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발표 직후 잠시 하락했던 금리는 하루 만에 다시 반등했다.
바이백은 재무부가 시장에 풀린 국채 일부를 다시 사들이는 방식이다. 거래가 뜸한 채권의 유동성을 높이고 만기 구조를 조정하는 효과는 있지만 전체 재정적자와 향후 발행해야 할 국채 물량 자체를 없애지는 못한다.
시장도 이 점을 확인하고 있다. 최근 미국 30년물 국채 입찰 낙찰금리는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고, 420억달러 규모 10년물 입찰 역시 2007년 9월 이후 최고 금리에서 소화됐다.
투자자에게 더 높은 금리를 줘야만 미국 정부가 필요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의미다. 정책금리 전망보다 재정적자와 국채 공급, 장기채 보유 위험에 대한 보상인 기간 프리미엄이 장기금리를 좌우하는 힘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의 부채 규모도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연방정부 총부채는 최근 40조달러를 넘어섰고 정부 내부 보유분을 제외한 공공보유부채만 약 32조달러로 미국 경제 규모와 비슷한 수준까지 늘었다.
최근 10년간 미국의 총부채는 두 배로 증가했으며 지난 1년 동안에만 약 3조달러가 추가됐다.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면 가장 빠른 증가 속도다.
부채 규모가 크다는 사실보다 시장이 민감하게 보는 것은 증가 속도다. 금리가 높은 상태에서 부채가 계속 늘면 신규 국채에는 더 높은 이자를 줘야 하고 기존 국채의 차환 비용까지 올라가면서 다시 재정 부담을 키우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장기금리 상승은 미국에만 나타나는 현상도 아니다.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는 지난 17일 2.93%까지 올라 1996년 이후 약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30년물 역시 4% 부근까지 상승했다.
배경에는 엔화 약세와 물가 부담이 있다. 일본의 7월 근원물가는 신선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기준으로 전년보다 1.9% 상승하며 9개월 만에 오름폭이 확대됐다.
일본은행(BOJ)이 9월 추가 금리 인상을 검토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통상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 해당 통화 가치도 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에는 엔화가 반대로 움직였다.
미국과 일본 정부의 공동 개입으로 달러당 164엔 수준에서 155엔대로 내려왔던 달러·엔 환율은 다시 159엔대까지 올라왔다.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회복했던 엔화 가치의 절반가량을 다시 반납한 셈이다.
금리가 오르는데도 통화가 강해지지 않는 현상은 시장이 일본의 통화정책만 보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장기금리가 경기 회복과 통화정책 정상화 때문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재정부담과 국채 공급 증가 때문에 상승한다면 오히려 국가의 이자 부담과 성장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미국과 일본의 장기금리가 동시에 높은 수준으로 올라온 것은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공급’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조정하더라도 장기금리는 각국 정부가 얼마나 많은 채권을 발행하는지, 투자자가 그 물량을 어떤 가격에 받아줄지에 따라 별도로 움직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자금 수요가 국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 인프라에 막대한 돈을 쏟고 있는 글로벌 빅테크들도 채권시장에서 동시에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알파벳은 올해 캐나다달러 시장에서 85억캐나다달러 규모 채권을 발행해 현지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불과 몇 주 뒤 아마존이 140억캐나다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하면서 기록을 다시 갈아치웠다.
빅테크의 자금조달은 달러에만 머물지 않는다. 스위스프랑과 파운드화, 캐나다달러 등 여러 통화로 발행시장을 넓히면서 세계 각국의 크레딧 자금을 AI 투자 재원으로 흡수하고 있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캐나다에서는 AA등급 회사채의 국채 대비 스프레드가 한 단계 낮은 A등급 회사채보다 더 확대되는 이례적인 현상까지 나타났다.
신용도가 더 높은 기업의 채권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금리를 요구받은 것이다. 빅테크가 한꺼번에 대규모 우량채를 내놓으면서 투자자에게 공급된 물량이 급증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AI로 향하는 자금 규모는 이미 상당하다. 최근 12개월간 미국 벤처캐피털 자금의 약 3분의 2가 AI 관련 기업에 집중됐고, 올해 미국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액 가운데 AI 관련 기업이 차지한 비중도 약 4분의 1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AI 투자 확대가 당장 신용경색을 일으킨다고 보기는 어렵다. 채권 발행과 프로젝트금융 등 금융시장의 자금조달 능력은 발전설비나 반도체 생산능력보다 상대적으로 탄력적으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국채와 회사채가 동시에 대규모 자금을 요구하는 상황은 이전과 다르다. 정부의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국채와 AI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한 회사채가 같은 투자자 자금을 놓고 경쟁할 경우 채권을 발행하는 쪽에서는 이전보다 높은 금리를 감수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AI 투자 열풍을 평가할 때 GPU와 데이터센터 숫자뿐 아니라 자본비용을 함께 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상 수익률이 아무리 높더라도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빌려야 하는 돈의 금리가 지속적으로 올라가면 프로젝트의 실제 수익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AI 데이터센터는 반도체뿐 아니라 토지와 전력망, 발전설비까지 동시에 필요하다. 이미 전력과 반도체에서 공급 병목이 나타나는 가운데 금융시장에서도 조달비용이 상승한다면 AI 투자 경쟁은 기술뿐 아니라 자본조달 능력의 경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연합뉴스
금융시장의 또 다른 움직임은 금과 비트코인에서 나타났다. 금리가 올라가면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금이나 비트코인에는 일반적으로 불리하지만 이번에는 두 자산이 동시에 강하게 상승했다.
비트코인은 한 주 동안 20% 넘게 뛰어 7만8000달러대를 기록하며 5월 이후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 금 가격도 온스당 4680.6달러까지 상승했다.
최근 5년간 주간 변동성과 비교해도 이례적인 움직임이었다. 비트코인의 주간 상승폭은 같은 기간 변동성 분포의 96.5퍼센타일, 금은 92.7퍼센타일 수준에 해당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와 국채 공급 증가가 장기적으로 화폐가치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금과 비트코인 수요로 연결됐다고 해석한다. 다만 금은 실질금리와 중앙은행 수요, 비트코인은 유동성과 레버리지, 투자자 포지션에도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최근 상승세를 재정 우려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금융시장 한쪽에서 자금이 금과 비트코인으로 이동하는 사이 실물 소비에서는 다른 신호가 나왔다. 월마트의 5~7월 미국 동일점포 매출 증가율은 2.6%로 떨어져 2019년 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실적 발표 직후 월마트 주가는 하루 동안 9.2% 하락해 2022년 5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미국 소매판매도 7월 감소세로 전환하면서 고금리와 물가 부담이 소비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월마트는 앞서 부과됐던 긴급 관세가 대법원 판결로 무효화되면서 돌려받은 약 29억달러를 연말까지 가격 인하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여기에 운송비 부담이 추가로 약 20억달러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소비자를 붙잡기 위한 가격 경쟁과 비용 부담이 동시에 커지는 상황이다.
결국 지금 시장에서 나타나는 여러 현상은 하나의 지점에서 연결된다. 미국 정부는 40조달러가 넘는 부채를 관리하기 위해 계속 국채를 발행해야 하고, 빅테크는 AI 투자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회사채 시장에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일본도 높은 국가부채와 통화정책 정상화 사이에서 장기금리가 상승하고 있다. 채권시장에서 자금의 가격이 높아지는 동안 금과 비트코인에는 자금이 몰리고, 소비 현장에서는 고금리와 물가 부담을 버티기 어려워지는 신호가 동시에 나타나는 모습이다.
당장 이를 금융시장 전체의 위기 신호로 볼 단계는 아니다. 다만 재무부의 바이백에도 미국 장기금리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중앙은행과 정부의 정책만으로 장기 자금의 가격을 쉽게 낮추기 어려워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앞으로 시장이 확인해야 할 것도 정책금리 한 가지가 아니다. 미국의 국채 발행 규모와 입찰 수요, 일본의 추가 금리 인상과 엔화 움직임, AI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과 자본지출 계획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특히 다음 분기 빅테크가 AI 투자 규모를 다시 높이면서 채권 발행까지 확대한다면 ‘AI 투자 증가→크레딧 수요 증가→조달금리 상승’이라는 연결고리가 더 뚜렷해질 수 있다. 반대로 자금조달 비용 상승이 투자계획 조정으로 이어진다면 AI 투자 사이클의 새로운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
정책금리보다 장기금리, 성장률보다 자본비용이 다시 시장의 중심에 서는 이유다. 돈을 구할 수 있느냐보다 얼마의 비용을 내야 그 돈을 구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지는 구간에 세계 금융시장이 들어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