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 한국 경제가 건설·설비투자와 민간소비 등 내수 부진 속에 다시 한 번 뒷걸음쳤다. 지난해 2분기(-0.2%) 이후 세 분기 만의 역성장으로, 한국은행이 당초 예상했던 올해 연간 성장률 1.5% 달성도 불투명해졌다.
한국은행은 24일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기 대비·속보치)이 -0.2%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한은이 지난 2월 제시한 전망치 0.2%보다 0.4%포인트(p) 낮은 수치다.
한국 경제는 지난해 1분기 ‘깜짝 성장’(1.3%) 이후, 2분기 -0.2% 역성장, 3·4분기 0.1% 성장에 그치는 등 반등에 실패했고, 올해 1분기 다시 역성장의 수렁에 빠졌다. 특히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도 -0.1%를 기록, 코로나19 충격이 있었던 2020년 4분기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했다.
한은은 이번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내수 침체를 지목했다. 이동원 한은 경제통계2국장은 “국내 정치 불확실성의 장기화와 미국 관세 정책 우려에 따른 통상환경 악화가 소비와 투자 심리 회복을 지연시켰다”며 “대형 산불, 고성능 반도체(HBM) 수요 이연, 일부 건설현장 공사 중단 등 이례적 요인도 성장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분기 GDP 성장률 기여도를 보면, 내수(소비+투자)는 -0.6%p로 성장률을 끌어내렸고, 순수출(수출-수입)은 0.3%p를 끌어올렸다. 내수 부진이 성장률 하락의 직접적인 요인이었고, 순수출은 수입 감소 폭이 수출 감소보다 커지면서 그나마 성장률을 방어했다.
부문별로 보면, 민간소비는 오락문화·의료 등 서비스 소비 부진으로 전분기 대비 0.1% 감소했고, 정부소비도 건강보험 급여비 지출 축소로 0.1% 줄었다. 건설투자는 건물 건설 부진으로 3.2% 감소했고, 설비투자도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 기계류 투자가 줄어 2.1% 감소했다. 특히 설비투자는 2021년 3분기(-4.9%)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수출은 화학제품과 기계·장비 부진으로 1.1% 줄었고, 수입은 에너지류(원유·천연가스 등)를 중심으로 2.0% 감소했다. 수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수입 감소 폭이 더 커 순수출은 성장률을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경제활동별로는 전기·가스·수도업이 가스·증기·공기조절 공급업 중심으로 7.9% 성장했고, 농림어업도 어업 호조로 3.2% 증가했다. 반면 제조업은 화학제품·기계장비 부진으로 0.8% 감소했고, 건설업도 건물 건설 부진으로 1.5% 줄었다. 서비스업은 금융·보험업과 정보통신업은 늘었으나, 운수업·도소매·숙박음식업 등이 줄며 전체로는 정체 상태를 보였다.
실질 국내총소득(GDI)도 0.4% 감소했다. 이는 실질 GDP 성장률(-0.2%)을 밑도는 수준으로, 원화 가치 하락과 수입 물가 상승 등 교역조건 악화가 실질 구매력을 떨어뜨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번 1분기 역성장으로 올해 연간 성장률 전망도 하향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한은이 제시한 1.5% 목표치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1분기 정치적 불확실성과 대형 산불 등 이례적 요인으로 성장률이 예상보다 크게 낮아졌다”며 “미국 관세 정책 등 대외 불확실성까지 고려하면 낙관적인 전망은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한은은 2분기부터 민간소비 중심의 내수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 효과와 정치적 불확실성 완화,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지출 등이 회복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동원 국장은 “빠른 속도의 회복은 어렵겠지만, 2분기에는 민간소비를 중심으로 개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건설투자 회복은 여전히 난망하다. 장기 고금리, PF 부실, 미분양 증가 등 구조적 요인이 지속되고 있어 회복세를 기대하긴 어렵다. 설비투자도 일시적인 조정을 마친 이후 증가세로 전환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