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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자금은 넘치는데 환율만 오른다…한은 “외환위기와는 전혀 다른 국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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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자금은 넘치는데 환율만 오른다…한은 “외환위기와는 전혀 다른 국면”

이경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1-19 15:27

달러 빌리기는 역대급으로 쉬운데 현물환에선 달러 품귀…“비관론 과잉이 환율 악순환 부를 수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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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파워 이경호 기자]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빌리는 자금시장은 사상 최고 수준의 ‘풍요’인데, 실제 달러를 사고파는 현물환시장에서는 원화 약세가 이어지는 이례적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외환시장 동향을 분석한 자료를 통해 “외화자금시장의 달러 유동성이 매우 풍부한 가운데 원/달러 환율만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현상은 1997년·2008년형 외환·금융위기와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19일 밝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 간 외화자금시장에서 달러를 빌릴 때 적용되는 스왑레이트에 내포된 가산금리(차익거래유인)는 최근 크게 축소되며, 원화를 담보로 달러를 조달하는 비용이 내외금리차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는 은행 등 금융기관 사이에서 달러를 빌리려는 수요에 비해 빌려주려는 공급이 월등히 많아 달러 자금이 “역사적으로 가장 저렴하게 조달 가능한 수준”에 있다는 뜻이라고 한은은 설명했다.

한은은 이 같은 풍부한 달러 유동성의 배경으로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와 기업의 외화예금 확대를 꼽았다. 2025년 11~12월에는 수출기업과 수입 중소기업이 환율 상승 가능성에 대비해 외화를 현물환시장에서 매도하지 않고 은행 외화예금으로 쌓아두는 경향이 두드러졌고, 정부와 한국은행이 시행한 ‘외환건전성 제도 탄력적 조정 방안’도 국내로 유입되는 외화자금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2025년 한 해 동안 외국인의 채권자금 유입 규모가 전년 대비 2.7배 늘면서,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외환스왑을 통해 달러를 빌려주고 받은 원화로 투자돼 외화자금시장 내 달러 공급을 크게 늘렸다는 분석이다.

반면 현물환시장에서는 강한 달러 매입 수요가 형성되며 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달러화 가치(DXY)와 크게 괴리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한은은 2022년 이후 달러화지수와 원/달러 환율이 대체로 비슷한 폭으로 움직였지만, 2025년 들어서는 달러화지수가 약 4% 상승하는 동안 원/달러 환율은 20%를 훌쩍 넘는 폭으로 올라 디커플링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같은 기간 엔/달러 환율은 30%를 크게 웃도는 폭으로 상승해 원화보다 더 큰 폭의 가치 하락을 겪었다.

이 같은 괴리는 외환 수급의 미세 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2025년 1~11월 경상수지 흑자는 1018억달러에 달했지만, 같은 기간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와 직접투자는 각각 1294억달러, 268억달러로 외국인의 국내 증권·직접투자 유입(채권 504억달러, 직접투자 63억달러)을 크게 상회했다. 거주자의 해외주식투자는 대부분 달러로 환전돼 나간 반면, 외국인의 채권투자 자금은 상당 부분 스왑을 통해 달러자금으로만 운용돼 현물환시장에서 실제 달러 매도로 이어지지 않았다.

특히 2025년 4분기에는 거주자의 해외주식투자가 월 300억달러 안팎까지 급증하고, 외국인 주식투자도 순유출로 돌아선 가운데 역외 NDF 시장에서 달러 매수세까지 강화되면서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달러 강세보다 더 큰 추가 상승 압력을 받았다.

그 결과 외화자금시장에서는 달러를 싼 값에 조달할 수 있는 ‘풍요’가, 현물환시장에서는 달러를 사려는 수요가 집중된 ‘빈곤’이 동시에 나타나는 구조적 불일치가 형성됐다는 게 한은의 진단이다. 한은은 이 같은 흐름이 2026년 1월 현재까지도 상당 부분 이어지고 있다며, 국내 증시 수익률이 양호함에도 미국 주식에 대한 장기간의 높은 기대 수익률 탓에 개인의 해외증권투자 유출이 여전히 큰 폭으로 지속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한국은행은 현재 상황을 외환·금융위기와 동일 선상에서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이 발행한 외화표시 채권(KP)의 가산금리는 50bp 내외, 정부가 발행한 외평채 가산금리는 30bp 중반, 국가 신용을 반영하는 CDS 프리미엄도 20bp 수준에 머무는 등 해외에서의 달러 차입 여건은 매우 양호하다는 설명이다. 순대외채권국 지위, 충분한 외환보유액, 대규모 대외순자산 등 대외지급능력 지표 역시 과거 위기 국면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은은 “외환위기는 대외지급능력 약화로 달러 차입이 어려워지면서 달러 차입 비용과 환율이 동시에 급등할 때 발생한다”며 “지금처럼 외화자금시장에서 달러를 역사적으로 가장 저렴하게 빌릴 수 있는 상황을 과거의 국가부도형 위기와 동일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엔화 환율이 2010년 이후 두 배 가까이 오르고도 일본을 외환위기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원/달러 환율 상승만으로 우리 경제의 시스템 리스크를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단순한 환율 수준을 근거로 ‘펀더멘털 악화’와 ‘외환위기 재연’을 우려하는 비관론이 과도하게 번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한은은 경고했다. 근거 없는 위기설이 확산될 경우 원화 추가 약세에 대한 일방향 기대를 키워 자본유출과 환율 상승이 서로를 자극하는 악순환을 부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수입물가 상승과 내수 위축 등 실물경제에 상당한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은행과 정부는 지난해 12월 외환시장 구두개입과 수급 안정화 조치를 통해 단기적인 수급 불균형 완화에 나섰으며, 그 결과 원/달러 환율과 글로벌 달러화 가치 간 괴리가 일부 축소된 것으로 평가했다. 올해 4월 예정된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과 함께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목표로 추진 중인 자본시장 접근성 개선, 국민연금의 새로운 환헤지·해외투자 프레임워크 등도 중장기적인 외환 수급 개선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은 “중장기적으로는 성장·물가·경상수지 등 펀더멘털을 뒷받침하는 정책을 통해 환율의 기초 체력을 높이고, 단기적으로는 외환 수급의 일방향 쏠림을 완화해 시장 기대를 안정시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며 “외화자금시장의 ‘풍요’와 현물환시장의 ‘빈곤’이 점차 해소되도록 정책·민간 부문의 기대가 서로 긍정적 상호작용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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