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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콩팥질환?

이설아 기자

기사입력 : 2026-02-17 11:32

[더파워 이설아 기자] 당뇨병과 고혈압으로 약물 치료를 받던 50대 여성 A씨는 혈압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았다. 약을 규칙적으로 먹고 있었지만 진료 때마다 수축기 혈압이 높게 측정됐고, 소변 검사에서는 알부민뇨(단백뇨의 초기 단계)가 증가한 소견이 반복됐다. 단순히 “혈압이 잘 안 떨어진다”는 문제로 보였지만, 추가 검사 결과 콩팥으로 혈액을 공급하는 주요 혈관이 좁아지는 신장동맥 협착증이 진단됐다. 혈관 상태를 고려해 고혈압 약제를 조정하자 혈압은 점차 안정됐고, 단백뇨 수치도 감소해 현재는 외래에서 경과를 관찰 중이다.

진료 현장에서 중년 이상의 환자가 “혈압이 조금 높은 편이라 약을 먹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A씨처럼 고혈압으로만 알고 지내다가 이미 콩팥질환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야 발견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콩팥은 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 소변으로 배출하고, 체내 수분과 전해질 균형을 조절하며 혈압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중요한 장기다. 하지만 기능이 상당 부분 떨어질 때까지 특별한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아 ‘조용한 장기’로 불린다.

고혈압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콩팥질환?


고혈압과 콩팥질환은 서로를 악화시키는 관계다. 혈압이 오랫동안 높게 유지되면 신장 안의 미세혈관이 손상돼 콩팥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콩팥 기능이 나빠지면 몸 안에 염분과 수분이 쌓이면서 혈압이 더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때문에 고혈압 환자 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만성 콩팥병을 함께 앓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환자들이 “혈압약만 잘 먹고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소변 검사나 혈액 검사를 통해 신장 상태를 확인해보지는 않는 현실이다.

초기 콩팥질환은 피로감, 부종, 소변 변화 같은 증상이 거의 없거나 매우 미미해 일상에서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러나 검사에서는 이미 단백뇨가 검출되거나 사구체여과율(eGFR)이 감소한 상태로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서울성모병원이 참여한 한국인 만성 콩팥병 장기 추적 연구(KNOW-CKD)에서 국내 만성 콩팥병 환자 2044명을 대상으로 혈압 변화와 신장 기능 저하 속도를 분석한 결과,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을수록 콩팥 기능이 더 빠르게 저하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톨릭대학교 8개 부속병원에서 진행 중인 사구체신염 코호트 연구에서도 같은 결론을 뒷받침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사구체신염인 IgA 신증 환자 중 단백뇨가 많은 환자들을 분석했을 때, 혈압 조절이 질환 진행 속도를 늦추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난 것이다. 다만 어떤 환자에게 어느 수치 이하의 혈압이 최적 목표가 되는지, 어떤 조합의 약제를 쓰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환자의 나이, 동반 질환, 이미 손상된 콩팥 기능 정도에 따라 전략이 달라질 수 있어 전문의 진료를 통한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고혈압 환자는 언제 콩팥질환을 의심해야 할까. 우선, 혈압약을 2~3가지 이상 복용하는데도 혈압이 잘 내려가지 않는 경우를 주의해야 한다. 충분한 용량의 약제를 사용하고 있는데도 혈압이 지속적으로 높거나, 최근 들어 갑자기 혈압이 더 상승하는 양상이 보인다면 단순한 본태성 고혈압이 아니라 콩팥질환으로 인한 이차성 고혈압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소변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나오는 경우도 중요한 신호다. 콩팥질환은 증상이 거의 없더라도 소변에서는 비교적 초기부터 변화가 나타난다. 단백뇨가 발견되거나, 혈뇨 소견이 반복되거나, 소변량이 줄고 밤에 소변을 보러 자주 깨는 야간뇨가 나타난다면 신장 기능 검사를 포함한 정밀 평가가 필요하다.

부종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콩팥이 체내 수분과 염분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면 얼굴, 발목, 종아리가 붓는 증상이 생긴다. 아침에만 잠깐 생겼다가 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하루 종일 부기가 유지되거나, 체중이 갑자기 늘고 혈압 상승이 함께 동반된다면 콩팥질환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

고혈압 진료 과정에서 시행한 혈액 검사에서 크레아티닌 수치가 상승하거나 사구체여과율이 감소한 경우도 중요하다. 별다른 불편함이 없더라도 이러한 수치는 이미 콩팥 기능이 저하되고 있다는 객관적인 지표이므로, 그냥 넘기지 말고 신장내과 전문 진료를 받아야 한다.

위험 요인이 있는 환자라면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40세 이전 비교적 젊은 나이에 고혈압이 생긴 경우, 당뇨병이나 심근경색·협심증 같은 심혈관 질환이 동반된 경우, 가족 중에 콩팥질환으로 투석이나 이식을 받은 사람이 있는 경우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콩팥질환으로 진행될 위험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 환자는 혈압 조절과 함께 정기적인 소변 검사, 혈액 검사를 통해 신장 상태를 꾸준히 점검하는 것이 권고된다.

콩팥질환은 한 번 진행되면 되돌리기 어렵지만 조기에 발견하면 진행의 속도를 늦추고 심각한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다. 고혈압을 진단받았다면 “혈압약을 먹는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하기보다는, 정기적으로 신장 기능 검사와 소변 검사를 함께 받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혈압 조절이 잘 되지 않거나 당뇨병, 가족력, 고령 등 위험 요인이 겹쳐 있다면 더 촘촘한 관리가 필요하다.

윤혜은 교수는 “고혈압 환자의 진료에서는 혈압 수치뿐 아니라 콩팥 상태를 함께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조기에 콩팥질환을 찾아 혈압을 적절히 관리하면 만성 콩팥병으로의 진행을 늦추고, 향후 투석이나 심혈관 질환 같은 심각한 결과를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고혈압 관리의 목표는 숫자를 낮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 콩팥을 포함한 전신 혈관을 지키는 것이 곧 건강한 노후를 준비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도움말 =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윤혜은 교수

이설아 더파워 기자 news@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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