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최성민 기자] 성범죄의 유무죄를 가르는 잣대가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가해자의 폭행과 협박이라는 물리적 실체에 집중되었다면, 현대의 법정은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본질적 가치에 주목한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2018년 대법원이 성희롱·성폭력 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심리 원칙으로 천명한 이후, 법원은 피해자가 처한 구체적 상황과 맥락을 배제한 채 기계적인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실질적인 정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사법 기조의 변화는 실무 현장에서 강제추행벌금형의 선고 빈도와 그 양형 기준에 유의미한 변화를 불러왔다. 과거라면 훈방이나 기소유예로 종결되었을 사안들이 이제는 정식 재판을 거쳐 유죄 판결로 이어지며 사법부는 이를 통해 성적 자율권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대법원 사법연감의 성폭력 범죄 처리 현황을 분석해 보면, 성범죄에 대한 무죄율은 갈수록 낮아지는 반면 유죄 판결 시 부과되는 벌금형의 하한선은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다. 특히 강제추행벌금형이 선고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재판부의 태도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핵심으로 요약된다.
첫번째는 '기습추행' 개념의 광범위한 인정이다. 현행 판례는 강제추행의 수단인 폭행이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일 필요가 없다고 본다.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 그 자체가 곧 폭행이며, 이는 곧바로 추행으로 연결된다는 논리다. 이러한 기습추행 법리는 강제추행벌금형의 적용 범위를 일상의 사소한 신체 접촉 영역까지 확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두번째는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기준의 변화다. 성인지 감수성이 적용된 재판에서 피해자 진술의 사소한 불일치는 더 이상 진술 전체의 신빙성을 배척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사건 직후 피해자가 보인 반응이 소위 '피해자다움'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피해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이는 증거가 부족한 성범죄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는 결정적인 동력이 된다.
마지막으로 양형 기준에도 사회적 합의가 반영되며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권고 기준은 점차 엄격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초범이거나 진지한 반성이 있다면 벌금형 수준에서 관용을 베푸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과 2차 피해 가능성을 양형의 핵심 인자로 반영한다. 결과적으로 강제추행벌금형은 단순한 금전적 징벌을 넘어 '국가가 공인한 성범죄자'라는 사회적 낙인과 보안처분이라는 실질적 제약을 동반하는 중형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수원·창원·청주지방검찰청 검사로 역임하며 수많은 성범죄 사건을 다뤄온 로엘 법무법인 박은석 파트너변호사는 사법부의 시각 변화를 현장에서 체감해 온 전문가다. 박은석 파트너변호사는 "과거의 잣대로 현재의 사건을 바라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단순히 '억울하다'는 감정적 호소는 성인지 감수성이 강화된 법정에서 오히려 가중 처벌의 근거가 될 뿐”이라며 “피해자의 진술을 일방적인 거짓으로 취급하며 탄핵하기보다 사안의 경중을 냉철히 분석하여 법리적 쟁점과 인도적 합의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