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과 화폐의 미래’ 주제로 1~2일 개최…통화정책 역할 변화와 디지털 결제 상충관계 조명
/연합뉴스
[더파워 이경호 기자] 금융시장 불안과 디지털화폐 확산,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향후 통화정책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1일부터 2일까지 ‘중앙은행, 그리고 화폐의 미래’를 주제로 ‘2026년 BOK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하고 1일차 발표 논문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고 1일 밝혔다.
올해 1일차 컨퍼런스에서는 금융취약성과 통화정책, 디지털 결제시스템의 구조적 딜레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 대한 정치적 편향성 인식 등 세 가지 주제가 다뤄진다. 발표 논문들은 중앙은행이 물가와 경기 안정뿐 아니라 금융안정, 개인정보 보호, 대중 신뢰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환경에 놓였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제시한다.
1세션에서는 토비아스 아드리안 IMF 금융자문관 겸 통화자본시장국 국장이 ‘금융취약성과 통화정책’을 주제로 발표한다. 해당 논문은 금융여건 완화가 단기적으로는 경기를 안정시키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금융기관의 위험자산 투자와 레버리지를 키워 미래의 극단적 경기침체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변동성 역설’을 분석했다.
논문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취약성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음에도 전통적 통화정책은 물가와 산출갭 안정에 주로 집중해 왔다고 진단했다. 금융시스템의 레버리지 확대와 금융중개기관의 위험선호 변화가 자산가격과 경기변동을 증폭시킬 수 있고, 거시건전성 정책만으로 이를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표준 뉴케인지언 모형에 금융기관의 위험관리 제약인 VaR 제약을 반영한 거시금융모형을 구축했다. 또 극단적 경기침체 위험을 측정하는 GDP-at-Risk를 활용해 금융기관의 위험인식 변화가 위험프리미엄, 대출, 레버리지 변화를 거쳐 미래 경기 하방위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미국 거시데이터와 시카고 연준의 금융조건지수도 활용해 금융여건과 미래 경기 하방위험 간 상관관계를 실증적으로 검토했다.
분석 결과 금융여건이 완화될 경우 금융기관의 위험제약이 느슨해지면서 단기적으로 생산과 경기가 개선될 수 있지만, 동시에 위험자산 투자와 레버리지가 늘어 향후 극단적 경기침체 위험이 커질 가능성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은 이에 따라 최적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과 산출갭만 고려하는 전통적 테일러 준칙보다 금융취약성까지 함께 반영하는 형태가 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2세션에서는 마커스 브루너마이어 프린스턴대 교수가 ‘지급결제-신용-디지털화폐의 삼중 딜레마’를 발표한다. 논문은 디지털화폐와 결제시스템이 기존 금융서비스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지만, 효율적 지급결제, 효율적 신용공급, 개인정보 보호라는 세 목표를 동시에 완벽하게 달성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디지털 결제시스템은 단순한 지급수단을 넘어 신용평가와 대출 기능까지 결합한 핵심 금융 인프라로 발전하고 있다. 논문은 중국 알리바바·위챗 등 빅테크 플랫폼, 브라질 Pix, 인도 핀테크 사례 등을 언급하며 디지털 결제 확산이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정책적 상충관계를 만든다고 분석했다.
운영 주체별 장단점도 구분됐다. 빅테크 플랫폼은 내부 거래와 결제 정보를 바탕으로 무담보 신용공급을 확대할 수 있지만, 독점과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있다. 경쟁적 민간 결제시스템은 플랫폼 간 이동을 가능하게 해 결제 효율성을 높일 수 있으나 차입자가 다른 결제수단을 이용해 대출 상환을 회피할 가능성을 키워 신용공급을 위축시킬 수 있다.
익명성 중심 디지털화폐는 현금처럼 거래정보 보호에 유리하지만, 거래 추적이 어려워 대출 상환을 강제하기 어렵다. 반대로 정부 중심 스마트 CBDC는 거래와 결제를 모니터링해 신용공급 안정성을 높일 수 있지만, 모든 거래정보가 중앙화될 경우 과도한 감시와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발생할 수 있다.
논문은 동태적 OLG 모형을 통해 상호운용성이 높아질수록 거래비용이 낮아져 지급결제 효율성은 개선될 수 있지만, 대출상환 강제가 약해져 신용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거래 익명성이 강화될수록 상환율이 하락하고 신용공급이 약화될 수 있다고 봤다. 향후 CBDC와 공공 디지털 지급결제 시스템을 설계할 때 결제 효율성, 신용공급, 개인정보 보호 간 상충관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시사점이다.
3세션에서는 마이클 베버 퍼듀대 및 ESMT 베를린대 교수가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주제로 발표한다. 해당 연구는 미국 소비자 520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기반 행동경제학 실험을 통해 연준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중앙은행 신뢰와 거시경제 기대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응답자의 정치 성향과 연준의 정치 성향에 대한 인식을 조사하고, 연준이 응답자의 정치 성향과 일치하면 ‘내집단’, 불일치하면 ‘외집단’으로 분류했다. 이어 참가자들에게 연준 통화정책 관련 뉴스를 읽게 하고, 뉴스 출처를 연준 공식발표나 CNN·Fox News 등 일반 언론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설계해 정보 수용 방식과 기대 변화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연준을 정치적으로 자신과 다른 외집단으로 인식한 응답자는 내집단으로 인식한 응답자보다 인플레이션 기대가 평균 1.8%포인트 높았다. 연준에 대한 신뢰 점수도 내집단 응답자는 4.2점, 외집단 응답자는 3.1점으로 차이가 났다.
연준을 내집단으로 인식한 소비자는 연준이 제공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려는 경향을 보였고,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수정할 때도 연준 공식 발표에 더 큰 가중치를 뒀다. 반면 외집단 소비자는 연준 정보보다 자신의 정치 성향과 맞는 언론사의 뉴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시나리오를 가정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4%가 트럼프 정부 출범 시 연준이 공화당 편을 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 경우 민주당 성향 응답자의 연준 신뢰도는 3.36점에서 2.72점으로 하락한 반면, 공화당 성향 응답자의 신뢰도는 2.98점에서 3.83점으로 상승했다. 트럼프 취임일인 2025년 1월 실시한 후속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8%가 연준을 공화당 편향으로 인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은 연준에 대한 정치적 편향성 인식이 해소될 경우 인플레이션 기대 왜곡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후생 손실이 약 33%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했다. 중앙은행이 제도적으로 독립돼 있더라도 대중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고 인식하면 통화정책의 신뢰와 유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이 공개한 1일차 논문들은 중앙은행의 정책 환경이 과거보다 복잡해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가와 경기 안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금융시스템의 취약성, 디지털 지급결제 인프라의 설계, 중앙은행에 대한 대중 신뢰와 정치적 중립성 인식까지 통화정책의 효과를 좌우하는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