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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프로젝트 전력전쟁, 발전량보다 전력망이 승부처

이경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7-13 11:16

반도체·AI 데이터센터 필요 전력 최대 39.7GW 전망
재생에너지·가스·원전 조합보다 배전망·변전소·BESS 투자가 핵심

'SK AI 데이터센터 울산' 기공식 세리머니/연합뉴스
'SK AI 데이터센터 울산' 기공식 세리머니/연합뉴스
[더파워 이경호 기자] 반도체 클러스터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전력 확보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필요한 전력 규모는 최대 39.7GW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단순히 발전소를 얼마나 더 짓느냐보다, 생산된 전력을 산업단지와 데이터센터까지 안정적으로 보내는 전력망 투자가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필요 전력 생산 캐파는 24.7GW다. 여기에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필요 전력을 최대치인 15GW로 잡으면 대용량 전력 수요는 총 39.7GW까지 늘어난다.

표면적으로는 전력 부족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2023년부터 2038년까지 발전원별 설비용량 증분은 원전 10.5GW, 가스 26GW, 석탄 -17GW로 제시돼 있다. 여기에 최근 확정된 2035년 재생에너지 증설 계획 최대치 124GW를 반영하면 발전 설비 확대 여력은 상당하다.

다만 설비용량이 곧 실제 전력 공급 능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원전을 기준으로 하고, 가스와 석탄 발전효율을 40%, 재생에너지를 20%로 보수적으로 적용하면 실제 전력 생산 캐파 증설분은 약 38.9GW 수준으로 계산된다. 메가프로젝트와 용인 반도체 산단이 요구하는 39.7GW와 거의 맞닿는 규모다.

결국 수치는 빠듯하다. 석탄 발전소 폐쇄 속도, 가스 발전 확대, 원전 추가 가동, 재생에너지 증설 속도에 따라 전력예비율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RE100 대응까지 고려하면 발전원 믹스 조정은 더 복잡해진다.

더 큰 문제는 전력망이다. 발전 능력을 확보하더라도 전기를 필요한 곳까지 안정적으로 보내지 못하면 산업 현장에서는 전력 부족과 다름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는 전력 사용량이 크고, 정전이나 전압 불안정에 민감한 시설이다.

새울 3·4호기 원전은 756kV 선로를 이용해 수도권으로 전력을 공급할 예정이지만, 대용량 원전이 특정 지역에 집중될 경우 대규모 정전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신한울 3·4호기는 초고압직류송전(HVDC)을 통해 수도권으로 전력을 보낼 계획인 만큼 공기 준수 여부가 중요하다.

지역별 전력망 투자도 과제로 꼽힌다. 반도체 팹이 들어서는 호남과 AI 데이터센터 입지 지역에서는 송전망뿐 아니라 배전망과 변전소 투자가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대형 발전소에서 전력을 끌어오는 구조만으로는 급증하는 산업용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도 전력망 안정성 투자를 동반해야 한다. 태양광과 풍력은 출력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 동기조상기, 그리드 포밍 인버터, 양수발전, 가상발전소(VPP) 같은 보완 설비가 함께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설비만 늘리고 계통 안정화 투자가 뒤따르지 않으면 출력 제한과 전력 품질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이번 메가프로젝트가 재생에너지 확대에 긍정적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그동안 재생에너지 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장거리 송전망이었다. 전남·전북, 강원, 경남·경북 등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야 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가 지방에 대규모 수요처를 만들면 상황이 달라진다. 장거리 송전망 부담을 줄이고, 지역 배전망 중심의 투자로 전력 수요를 일부 흡수할 수 있다. 특히 호남 지역 해상풍력과 태양광 발전 단지는 가까운 곳에 대형 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다.

수요 기업의 성격도 중요하다.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의 최종 고객은 빅테크와 하이퍼스케일러가 대부분이다. 이들 기업 상당수는 RE100을 선언한 글로벌 기업이다. 전력을 단순히 많이 공급하는 것만큼이나, 어떤 전력으로 공급하느냐가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미국에서는 이미 이런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자국 내 신설 반도체 팹의 사용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기로 했다. 핵심 설비인 뉴욕 팹은 100% 재생에너지 사용이 법제화된 사례로 언급된다.

한국도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려면 재생에너지 전력믹스 확대가 불가피하다. 전력 가격과 공급 안정성뿐 아니라 RE100 대응 가능성이 글로벌 고객사와의 거래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력 인프라 투자의 초점은 세 갈래로 좁혀진다. 첫째, 발전원 조합을 조정해 실제 전력 생산 능력을 수요 증가에 맞추는 일이다. 둘째, 송전망과 배전망, 변전소를 산업 입지에 맞춰 선제적으로 확충하는 일이다. 셋째, 재생에너지 확대에 맞춰 계통 안정화 설비를 동시에 투자하는 일이다.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는 국가 전략산업의 핵심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들 산업은 공장 부지와 세제 지원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 재생에너지 조달, 전력망 안전성이 함께 확보돼야 한다. 메가프로젝트의 성패가 발전량보다 전력 인프라 투자 속도에 달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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