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광주 군공항 이전과 국가산업단지 조성, 신안 우이 해상풍력 사업을 설명하는 데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정부는 AI와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력 기반과 산업기반을 동시에 구축해야 한다며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역경제를 살리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에는 누구도 쉽게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업이 추진되는 현장에서는 또 다른 단어가 들린다. 바로 '신뢰'다.
신안 우이 해상풍력 사업은 2029년 상업운전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연간 막대한 규모의 친환경 전력을 생산해 AI 산업과 반도체 공장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이 된다. 탄소중립 시대를 준비하는 국가 에너지 전략에서도 의미가 크다. 친환경 에너지 확대와 첨단산업 육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도 적지 않다.
그러나 행사장 밖 분위기는 달랐다. 주민들은 사업 추진 과정에서 제대로 된 설명과 소통이 부족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 발전을 위한 사업이라면서 정작 주민들은 결정 과정에서 소외됐고, 실질적인 이익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사업이 시작되면 지역은 변화하지만 그 변화의 혜택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것도 같은 대목이다. 주민 수용성은 사업이 막힐 때 해결하는 문제가 아니라 기획 단계에서부터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충분한 정보 공개와 주민 참여, 그리고 이익 공유 체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사업도 갈등이라는 높은 벽을 넘기 어렵다.
광주 군공항 이전 문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는 연내 이전 후보지 확정과 국가산단 착공을 목표로 일정을 제시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선행 절차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통합특별시의회에서는 현재의 기부대양여 방식만으로는 사업비 마련에 한계가 있는 만큼 국가가 직접 재정을 투입할 수 있도록 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무안 지역 역시 민간공항 선이전과 국비 지원 등 기존 약속이 먼저 이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일정표를 이야기하지만 지역은 약속의 이행을 요구한다. 결국 사업 추진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얼마나 신뢰를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다.
대형 국책사업은 언제나 시간이 중요하다. 사업이 늦어질수록 비용은 늘어나고 국가 경쟁력도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정부는 속도를 강조한다. 하지만 신뢰를 잃은 속도는 오히려 더 큰 지연을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수많은 개발사업에서 경험했다.
주민 설명회는 열렸지만 주민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공청회는 있었지만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으며, 보상은 논의됐지만 미래에 대한 약속은 부족했다. 절차는 있었지만 공감은 없었다.
이제는 개발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주민을 설득의 대상으로 보는 시대는 지났다. 주민은 사업의 이해관계자이자 함께 결정해야 할 주체다. 사업 초기부터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민이 직접 참여하며, 사업 성과를 지역과 공유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갈등은 줄어들 수 있다.
AI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사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첨단산업도, 재생에너지도 결국 국민의 삶을 위한 정책이다. 주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개발은 성공한 사업으로 평가받기 어렵다.
속도는 계획으로 만들 수 있지만 신뢰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미래를 준비하는 국책사업일수록 더 빠른 추진보다 더 깊은 소통이 필요하다.
결국 국가 경쟁력은 거대한 시설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책을 믿고 함께하는 시민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지금 정부와 지자체가 가장 먼저 세워야 할 인프라는 발전소도 산업단지도 아닌, 주민과의 신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