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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산 원유 우회로까지 흔들렸다…정유사 실적 변수 부상

이경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7-21 10:36

WTI 82달러로 상승…등유·경유 가격 주간 20% 안팎 급등
해상 물류 차질·정제설비 가동률 하락에 정제마진 강세 전망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들/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들/연합뉴스
[더파워 이경호 기자] 국제유가와 석유제품 가격이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를 타고 다시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이 확대된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바브엘만데브 해협 봉쇄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원유 생산 부족보다 해상 물류 차질과 정제설비 가동률 하락이 가격을 밀어 올리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WTI는 배럴당 82달러 수준까지 상승했다. 주간 기준으로 WTI는 11.9%, 휘발유는 10.4%, 등유는 21.1%, 경유는 19.6%, 고유황중유는 17.9% 올랐다. 석유제품 가격 상승 폭이 원유 가격 상승률을 웃돈 셈이다.

유진투자증권은 이번 가격 상승의 핵심을 중동 해상 운송 리스크로 짚었다. 이란의 상선 공격으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미국이 정수장 등 민간 인프라까지 공격 범위를 확대하면서 갈등이 격화됐다는 설명이다.

시장 우려는 호르무즈 해협을 넘어 홍해 항로로 번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사우디는 동서 송유관을 활용해 홍해 연안 얀부항 수출을 하루 400만배럴까지 늘렸다. 이에 따라 바브엘만데브 해협 전체 물동량도 하루 740만배럴로 증가했다.

문제는 후티 반군이 실제로 홍해 항로를 차단할 경우다. 이 경우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한 원유 물량마저 막히게 된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해상 운임 부담도 이미 반영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홍해 항로의 전쟁 보험료는 기존 0.3%에서 0.75%로 급등했다. 원유와 석유제품 운송비가 높아질 경우 정유사의 원가 구조와 제품 가격 변동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정유 시설 차질도 가격 상승을 키우는 요인이다.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으로 러시아 정유시설 가동 물량은 30% 감소했고, 미국 휘발유와 중간유분 재고도 5년래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 역시 항공유와 디젤 재고가 줄어 공급 불안이 지속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원유 생산 자체가 부족한 상황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OPEC+ 증산과 미국 생산은 유지되고 있고, 지난 6월 호르무즈 해협이 일시적으로 재개방되는 동안 8000만배럴의 원유가 공급돼 현재 육상 저장시설로 이전되고 있다.

결국 지금의 가격 강세는 생산량 부족보다 물류 병목과 정제설비 차질에 가깝다. 원유가 있어도 필요한 지역으로 운반하기 어렵고, 운반된 원유를 휘발유·경유·항공유로 충분히 정제하지 못하면 제품 가격이 원유보다 더 민감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국제유가보다 석유제품 가격 변동성이 더 커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동시에 막히면 중동산 원유의 아시아 수출뿐 아니라 글로벌 석유제품 공급망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제품별 가격 흐름도 이를 보여준다. 7월 17일 기준 두바이유는 배럴당 77.5달러로 전주 대비 13.7% 올랐고, WTI는 79.7달러로 11.9% 상승했다. 같은 기간 등유는 144.8달러로 21.1%, 경유는 144.2달러로 19.6% 뛰었다.

정제마진 강세도 이어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유진투자증권은 정제설비 복구에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제마진 강세가 지속될 수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SK이노베이션과 S-OIL 등 국내 정유사의 하반기 실적 눈높이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전망했다.

화학 제품 가격도 동반 상승했다. 부타디엔은 전주 대비 15.9%, 에틸렌은 9.7%, 납사는 7.3%, 벤젠은 6.9%, 자일렌은 6.6% 올랐다. 원료와 기초유분 가격이 함께 움직이면서 화학업체의 스프레드 회복 여부도 업종별로 갈릴 가능성이 커졌다.

부타디엔 가격 상승은 합성고무 체인에 직접적인 변수다. 7월 20일 기준 부타디엔 가격은 톤당 1275달러로 전주 1100달러보다 15.9% 상승했다. 같은 기간 SBR 가격은 톤당 1850달러로 변동이 없었다. 원료 가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충분히 전가하지 못할 경우 단기 스프레드 부담이 생길 수 있다.

태양광 체인은 상대적으로 약한 흐름을 보였다. 셀 가격은 전주 대비 3.1%, 모듈 가격은 0.8% 하락했다. 반면 알루미늄은 0.7%, 메탈실리콘은 0.4% 올랐다. 정유·화학 제품 가격이 지정학 리스크를 반영해 급등한 것과 달리 태양광 가격은 공급 부담이 이어지는 양상이다.

하반기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다. 첫째,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동시 차질 가능성이다. 둘째, 러시아와 미국, 유럽 정제설비 가동 차질이 얼마나 길어지는지다. 셋째, 원유 가격보다 경유·등유·항공유 등 석유제품 가격이 더 강하게 움직이는 흐름이 국내 정유사 실적으로 연결되는지다.

정유화학 시장은 원유 생산량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구간에 들어섰다. 해상 운송로와 정제설비, 제품 재고가 동시에 가격을 흔들고 있다. 유가 상승보다 제품 가격과 정제마진의 방향성이 국내 정유사 실적을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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