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조정장은 수출 급감 동반…이번엔 반도체 수출 둔화 신호 제한적
하이퍼스케일러 신용 우려·중국 반도체 공포·금리 부담이 투자심리 압박
/연합뉴스
[더파워 이경호 기자] 코스피가 단기간 큰 폭으로 밀리면서 조정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이 커지고 있다. 과거 국내 증시 급락기에는 수출 경기 둔화가 함께 나타났지만, 이번에는 반도체 수출을 중심으로 한 펀더멘털 훼손 신호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하락폭이 과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과 미국, 일본, 대만 반도체주는 동반 약세를 보이고 있다. 하이퍼스케일러의 자본지출 확대에 따른 수익성 우려,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상장 이후 불거진 중국 반도체 굴기 경계감, 미국 금리 인상 우려에 따른 국채금리 상승 등이 반도체주 급락의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가상화폐 시장과 맞물린 레버리지 거래 확대도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반도체 관련 주가에 연동된 투자 수요가 빠르게 불어나면서 상승장에서는 랠리를 키웠지만, 조정장에서는 매도 압력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문제는 주가 하락 속도와 수출 경기의 괴리다. 과거 코스피가 크게 조정받았던 국면의 공통점은 국내 수출 사이클 둔화였다. 닷컴버블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 반도체 사이클 조정, 팬데믹 이후 유동성 붐 종료 구간 모두 전체 수출과 반도체 수출이 함께 줄면서 주가 조정을 키웠다.
대표적으로 팬데믹 직후 유동성 붐이 꺾였던 2020~2023년 국면에서는 코스피가 고점 대비 34.8% 하락했고, 같은 기간 국내 전체 수출액과 반도체 수출액은 각각 27.4%, 54.5%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코스피가 54.5% 하락하는 동안 전체 수출액은 48.4%, 반도체 수출액은 60.5% 감소했다.
이번 조정은 양상이 다르다. 코스피는 고점 대비 한 달여 만에 약 34% 밀렸지만, 국내 수출 경기는 여전히 확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주가가 수출 경기를 선행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7월 이후 반도체 수출이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수출 단가와 물량 흐름도 이를 뒷받침한다. 반도체 수출단가의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고, 반도체 수출물량 역시 하반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국내 반도체 수출액은 사상 최고치 경신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하이퍼스케일러 투자도 핵심 변수다. AI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면서 잉여현금흐름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업활동현금흐름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올해와 내년 5대 하이퍼스케일러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은 20% 후반대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닷컴버블 당시와 다른 지점이다. 당시 자주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는 시스코시스템즈와 인텔은 버블 붕괴 전후로 영업활동현금흐름 증가세가 꺾이거나 정체됐다. 현재 빅테크의 현금창출력이 유지되고 있다면 자본지출 확대가 곧바로 신용위험 현실화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 반도체 굴기에 대한 공포도 단기적으로는 과도하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은 분명하지만, 한국 반도체 기업을 단기간에 넘어서는 경쟁력을 확보할 가능성은 낮다는 판단이다. CXMT 주가는 상장일 466% 급등했지만 다음 거래일에는 4.3% 하락해 충격의 지속성에는 의문이 남았다.
결국 이번 조정의 본질은 경기 침체보다 투자심리와 수급 불안에 가깝다. 반도체 패닉셀 현상은 펀더멘털 악화보다 각종 불확실성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나타난 매도 압력이라는 해석이다. 이 때문에 추가 조정 폭도 제한적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반등을 위해서는 투자심리를 안정시킬 재료가 필요하다. 국내 반도체 수출 지표 호조가 확인되고, 국채금리가 안정되며, 하이퍼스케일러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상승세가 둔화돼야 시장의 불안이 완화될 수 있다.
주가가 먼저 꺾였다는 점에서 향후 수출 지표 확인은 더 중요해졌다. 실제 반도체 수출이 하반기에도 증가세를 이어간다면 이번 조정은 펀더멘털 훼손보다 과도한 위험 회피로 해석될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수출 단가와 물량이 동시에 둔화된다면 주가는 경기 선행성을 반영한 셈이 된다.
지금 시장의 핵심 질문은 단순히 코스피가 얼마나 더 빠질지에 있지 않다. 반도체 수출과 빅테크 현금흐름이 주가 급락을 정당화할 만큼 꺾이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지표만 놓고 보면, 증시가 먼저 겁을 먹은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