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 1559원선→9월 초 1330원선…단기간 200원 넘게 급락
외국인 매도 진정·수출기업 달러 공급이 원화 강세 견인
美 시장금리 5.1% 돌파·달러인덱스 101 넘어…금리차 다시 확대
대미 직접투자 본격화에 기업 달러 수요 증가…연말 1400원 안팎 전망도
/연합뉴스
[더파워 이경호 기자] 6월 초 1550원을 넘어섰던 원·달러 환율이 불과 석 달 만에 1330원선까지 내려왔다. 외국인 주식 매도 진정과 수출기업의 달러 공급, 정책 공조가 원화 강세를 이끌었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다시 바뀌고 있다.
미국 시장금리가 5%를 넘어선 가운데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고, 국내 기업들의 대미 투자 확대까지 본격화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다시 1400원대를 향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 6월 초 1559원선에서 9월 초 1330원선까지 급락한 뒤 최근 1300원대 중반에서 방향성을 탐색하고 있다.
불과 세 달 사이 200원 넘게 하락한 셈이다. 시장에서는 연말 환율이 1300원 초반 또는 그 이하로 내려갈 것이란 전망과 다시 1400원 안팎까지 오를 것이란 예상이 엇갈리고 있다.
최근까지 원화 강세를 이끈 핵심은 수급이었다.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 발행 기대를 시작으로 수출기업들의 달러 공급이 늘면서 외환시장 수급이 개선됐다. 원화 약세를 자극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주식 대량 매도도 일단 진정됐다.
한·미·일 정책 공조 역시 환율 하락에 힘을 보탰다. 원화와 연동성이 높은 엔화에 대해 미국과 일본 정부의 구두 개입이 이어지고 있고, 한국은행의 매파적인 통화정책 기조도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문제는 이런 재료가 이미 환율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점이다. 1550원대에서 1330원대까지 단기간에 환율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원화 강세 요인이 빠르게 가격에 반영된 반면 미국 금리 상승과 달러 강세 등 원화 약세 요인은 상대적으로 덜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8월 중순 이후 달러인덱스와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은 엇갈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달러인덱스와 원·달러 환율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달러 가치가 올라가면 원·달러 환율도 상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에는 달러가 강해지는 동안 원·달러 환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두 지표 간 괴리가 확대됐다. 국내 수급과 정책 요인이 미국발 달러 강세를 상쇄한 결과다. 이 괴리가 장기간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나온다.
가장 큰 변수는 미국 금리다. 미국 시장금리는 최근 5.1%선을 넘어섰고 달러인덱스도 101을 돌파했다. 미국과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주요국 간 금리차도 다시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줄어들던 한·미 금리차가 원·달러 환율 급락에 영향을 줬다면, 6월 이후에는 반대로 금리차가 다시 벌어지고 있다. 특히 8월 하순부터 확대 속도가 빨라지면서 달러 강세 압력도 커지고 있다.
미국 금리가 당분간 5% 안팎의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달러 강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금리차가 확대되면 글로벌 자금 역시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달러 자산으로 이동할 유인이 커진다.
국내 기업들의 대미 투자 확대도 새로운 변수다. 정부가 언급한 전체 대미 투자 규모는 2000억달러 수준이며 연간 투자액은 약 200억달러로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환시장 전체 규모를 감안하면 한 번에 시장을 흔들 정도의 금액은 아니라는 평가다.
하지만 문제는 투자 방식이다. 공장 건설이나 지분 취득과 같은 직접투자는 단기간에 끝나는 거래가 아니라 수년간 이어진다. 투자 집행이 구체화될수록 국내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달러를 확보해야 한다.
최근 기업들의 달러예금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6월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락했음에도 주요 은행의 기업 달러예금은 오히려 증가했다. 환율이 내려간 시점에 기업들이 달러를 매도하기보다 향후 투자와 결제 수요에 대비해 달러를 쌓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외국인 주식 매매 흐름도 다시 지켜봐야 한다. 환율 급락 과정에서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 대량 매도가 진정된 것이 원화 강세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최근에는 순매도 흐름이 다시 강해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매도한 뒤 자금을 달러로 바꿔 해외로 이동시키면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질 수 있다. 결국 현재 외환시장은 원화 강세와 약세 재료가 정면으로 맞서는 구간에 들어선 모습이다.
경상수지 흑자와 수출기업의 달러 공급, 정책 공조는 환율 상승을 막는 요인이다. 반면 미국 금리 상승과 달러 강세, 외국인 자금 흐름 변화, 대미 투자 확대에 따른 달러 수요는 환율을 밀어 올리는 요인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원화 강세 요인이 급격한 환율 하락 과정에서 상당 부분 반영된 반면 미국 금리와 달러 강세 등 약세 요인이 향후 더 크게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연말 원·달러 환율은 1400원 안팎까지 다시 오를 수 있으며 대외 여건이 더 악화될 경우 연말이나 내년에는 1400원대 중후반까지 상승할 가능성도 열어둘 필요가 있다는 전망이다.
다만 상반기처럼 1500원대 중반까지 급등하는 흐름이 그대로 재현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함께 나온다. 경상수지 흑자와 수출기업 달러 공급 등 원화 강세를 뒷받침하는 수급 요인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1300원대 중반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원·달러 환율의 다음 방향은 미국 금리와 국내 달러 수급이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원화 강세 재료가 상당 부분 반영된 상황에서 미국발 금리 상승과 대미 투자에 따른 달러 수요가 얼마나 빠르게 부각되느냐가 다시 1400원대를 여는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