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최성민 기자] 구직사이트나 SNS에서 고액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고 현금을 전달하거나 계좌로 돈을 입금했다가 보이스피싱연루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는 경우가 있다. 자신은 전체 범행 구조를 몰랐고 지시받은 업무만 했다고 주장하더라도 실제로 어떤 역할을 수행했고 당시 범죄 가능성을 어느 정도 인식했는지가 형사책임을 판단하는 중요한 쟁점이 된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피해자를 속여 돈을 교부받았다면 기본적으로 형법상 사기죄가 문제된다. 현금수거책이나 전달책이 피해자에게 직접 거짓말하지 않았더라도 범행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현금을 수거·전달하는 등 실행행위를 분담했다면 구체적인 가담 정도에 따라 사기죄의 공동정범이나 방조범이 문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A가 채권회수 업무라는 설명을 듣고 지정된 장소에서 여러 사람에게 현금을 받은 뒤 성명불상자의 지시에 따라 다른 계좌로 무통장입금했다고 가정해볼 수 있다. 단순히 “회사에서 시킨 일인 줄 알았다”는 진술만으로 혐의가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현금을 전달했다는 사실만으로 보이스피싱 범행의 고의가 자동으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대법원 역시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이 공모나 고의를 부인하는 사건에서는 피고인의 경력과 업무방식, 수당, 지시받은 방법, 범행 과정에서 경험한 비정상적인 사정 등 여러 간접사실을 종합해 고의를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보이스피싱연루 사건에서는 일을 시작하게 된 과정부터 확인해야 한다. 정상적인 근로계약이나 면접이 있었는지, 누구에게 지시를 받았는지, 현금 전달 업무를 어떻게 설명받았는지, 일반적인 아르바이트보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당을 받았는지 등이 중요한 판단자료가 될 수 있다.
자신의 통장이나 체크카드 등 접근매체를 다른 사람에게 제공한 경우에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도 별도로 문제될 수 있다. 특히 대가를 받거나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빌려준 경우에는 단순히 “내가 직접 보이스피싱을 한 것은 아니다”라는 사정만으로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찰 연락을 받은 뒤 텔레그램이나 카카오톡 대화, 구인광고, 송금내역을 삭제하는 행동은 피해야 한다. 오히려 처음 받은 구인광고부터 담당자와의 대화, 업무지시, 이동경로, 피해자에게 받은 금액과 전달방법, 자신이 받은 수당을 시간순으로 보존해야 한다.
특히 조사 과정에서 다른 사건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는 취지로 추측해서 진술하거나 반대로 객관적인 자료가 남아 있는데도 무조건 아무것도 몰랐다고 부인하는 방식은 주의해야 한다. 자신이 실제로 보고 들은 내용과 당시 의심했던 사정,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법무법인 오현 노필립 형사전문변호사는 “보이스피싱연루 사건의 핵심은 단순히 돈을 전달했다는 결과만이 아니라 당시 보이스피싱 범행임을 인식하면서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판단하는 데 있다”며 “현금수거책이나 전달책, 계좌제공자로 조사를 받게 됐다면 가담 경위와 업무지시, 대가, 대화 및 금융거래 자료를 먼저 확보해 자신의 역할과 인식 정도를 구체적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