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채택 문제를 놓고 난항을 겪던 국정원 국정조사가 증인채택에 일부분 합의하고 23일까지 기간을 연장하기로 함으로써 가까스로 재개됐다.
하지만 미합의 증인채택 등 파행의 걸림돌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 국정조사가 원만히 실시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또 정국 정상화를 위해 제안된 대통령과 여야대표 회담이 회담형식을 둘러싼 교착상태가 이어지고 있고, 8일 정부가 내놓은 세법개정안은 실타래처럼 엉킨 정국을 더욱 꼬이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정국 정상화를 위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지금, 다른 한편에선 한시가 급한 민생 현안들이 쌓여만 가고 있다.
당장 부동산시장만 봐도 그렇다. 이사철이 아닌데 전셋값은 치솟고 있다. 지난달 전국 주택의 전세가격은 6월 대비 0.37%가 올라 53개월째 오름세를 이어갔고, 서울의 경우 비수기인데도 0.52%나 올라 21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또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전국평균은 60%대지만 수도권지역은 70%에 육박한다. 주택 매매시장은 썰렁한데 전세시장은 폭등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 전세자금대출이 폭증해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고,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극심한 전세대란도 예상되고 있다.
국민 가계부채는 지난 3월말 현재 961조6000억원으로 올해 안에 10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돼 부채에 따른 가계 부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전체 가계부채의 70% 이상이 상환능력이 양호한 고소득층의 빚이고, 금융권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도 50% 수준이어서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올해 1분기 저소득층과 고령층의 ‘소득대비 부채 비율’을 보면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1분위가 184%로 2분위 122%, 3분위 130%, 4분위 157%를 크게 앞섰고, 연령대별로도 40대는 178%인데 비해 50대는 207%, 60대는 253%로 상환불능 상태의 채무자가 급증해 매우 우려스런 상황으로 보인다.
또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13년 6월 현재 고용률은 60.5%로 전년 동월 대비 0.1% 상승에 불과해 답보상태인 것으로 나타났고, 20~29세 청년층 고용률은 59%에서 57.6%로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고용률 70% 로드맵에 따라 시간제 일자리 확대와 근로시간단축 등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얼마만큼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올해 상반기 국세 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조1000억원이나 덜 걷힌 것으로 나타나 정부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시름도 더 깊게 만들고 있다. 지난 8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14년 재정운용 방향 및 주요 현안’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국세 수입실적은 97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07조3000억원보다 10조1000억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목별로는 올해 6월까지 법인세 세수 실적은 21조4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4조2000억원 줄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8일 ‘2013년 세법개정안’과 ‘중장기 조세정책방향’을 확정했는데, 향후 5년간 조세정책방향과 관련해 국정과제 추진에 필요한 재원마련을 위해 조세부담률을 올해 20.2%에서 2017년 21%로 끌어올리기로 하고, 재원은 증세보다 비과세·감면 정비, 지하경제 양성화 등 과세기반 확대를 우선 추진하되 추가 재원이 필요하면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세입 확충의 폭과 방법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로 했다. ‘중장기 조세정책방향’에 근거해 마련한 올해 세법개정안은 인적·특별공제 항목의 소득공제를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꿔 중산층과 고소득자의 세(稅) 부담을 늘리고 이를 저소득층에 지원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를 위해 상대적으로 세원이 노출된 중산층 근로자의 세(稅) 부담을 늘렸다는 지적이 많아 향후 정국 정상화에 또 다른 변수가 되고 있다. 오늘 12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세제개편안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지만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이렇듯 민생 현안들은 넘쳐나고 있는데, 우리 정치권이 정치적 사안에만 매달리다 국민의 시름이 더 깊어지는 것은 아닌지, 또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국정원 국정조사와 연계돼 가뜩이나 엉킨 정국을 더 꼬이게 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물론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과 ‘NLL 포기 논란’으로 촉발된 현 정국이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중대한 국면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국민의 실질적인 생활 또한 위기의 국면에 도달한 만큼 이의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야는 한시라도 빨리 두 사안을 국회 내에서 정상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9월 정기국회에서는 최소한 민생 현안만이라도 따로 분리해 국회 내에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국민의 시름을 덜어줄 수 있는 대책들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참고 : 주택담보인정비율(LTV, Loan-to-Value ratio)은 주택가격에 비해 주택담보대출금액이 어느 정도 차지하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취급 및 한도를 산정하는 기준의 하나이다. 즉, 담보인정비율은 부동산 등을 담보로 대출하는 경우 부동산 감정가액의 일정비율 이내에서 대출하게 하여 리스크를 관리하는 제도이다. 참고로 총부채상환비율(DTI, Debt-to- income ratio)은 주택담보대출의 연간원리금 상환액과 기타부채의 연간이자 상환액의 합을 연소득으로 나눈 비율이다. DTI는 봉급생활자의 총급여소득(자영업자의 경우 사업소득)을 감안해 대출한도를 정하는 제도로 기존의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엄격히 하는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