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서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 바로 ‘한’(恨)이다. 한은 맺힘과 풀림이다. 어떤 계기로 인해 욕구나 의지가 좌절되고, 삶의 파국을 초래하는 경우 한이 맺힌다.
맺힘의 반대편에는 풀림이 있다. 원한의 소유자는 그 원한을 편집적이고 강박적으로 풀고자 애쓴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집착은 상처의 깊이와 응어리의 응집력에 비례한 힘을 가지게 된다. 뮤지컬 ‘서편제’는 이런 ‘한’을 품은 세 인물이 걷는 소리길과 인생길을 논한다.
어린 ‘송화’와 ‘동호’는 ‘유봉’이 이끄는 전국의 소리길을 유랑한다. 하지만 ‘동호’는 점차 록, 팝 등 라디오에서 나오는 서양 음악에 빠져들어 자신의 소리길을 찾아 떠난다. 남은 ‘송화’는 ‘동호’를 잃은 슬픔과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한으로 쌓이지만, 곧 진정한 소리꾼으로서의 길을 걷는다.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후, ‘동호’는 ‘송화’의 소리를 청하기 위해 온 손님인 척하며 소리에 맞춰 북을 친다. ‘송화’는 곧 손님이 ‘동호’임을 깨닫지만 내색하지 않고 소리를 한다. 심청가 중 심봉사가 눈 뜨는 대목의 소리와 북장단이 이어진다.
이번 시즌 공연은 2010년 초연, 2012년 재연을 잇는 세 번째 무대다. 이지나 연출가의 말에 따르면, 이전까지 세 인물 중 결말이 다소 미비했던 ‘동호’ 캐릭터 강화에 주안점을 뒀다고 한다. 이를 입증하듯 1막 첫 장면은 ‘동호’의 록 공연으로 시작된다. 2막 초반부에도 서양 음악을 대표하는 오아시스밴드와 동호가 함께하는 장면이 길게 늘어진다.
넘버를 추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호’ 캐릭터는 전달력이 부족하고, 극에서 이질감이 든다. ‘동호’가 왜 하필 많은 장르 중 록을 선택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차라리 판소리처럼 내지르는 자연스럽고 신나는 록 무대가 연출됐다면 좋지 않았을까. ‘동호’는 여전히 관객이 다시 해석해야 할 다소 애매한 캐릭터로 남겨졌다.
▲마이클리
‘동호’ 역을 연기한 마이클 리는 청아한 목소리로 판소리부터 팝, 록 등 다양한 장르의 곡을 자연스레 소화했다. 초연부터 뮤지컬 ‘서편제’와 함께해 온 이자람은 소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송화’ 그 자체였다. 동생 동호가 떠난 후 아버지 ‘유봉’이 자신의 눈을 멀게 했을 때 부르는 넘버 ‘원망’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송화’의 한을 그대로 전달했다.
특히 마지막 ‘심청가’의 담담한 울림은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 양준모는 힘 있고 굳센 소리로 공연 전반의 흐름을 이끌며 소리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많은 인물인 ‘유봉’을 잘 표현해냈다.
무대는 최소한의 장치와 소품으로 여백을 남겼다. 한지를 활용한 넓직한 기둥이 분할돼 빈 소리 터를 만들기도, 합쳐져 커다란 나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단순한 움직임으로 다양한 무대를 표현해냈다. 가운데 설치된 동그란 회전무대는 무빙워크처럼 움직이며 세 주인공의 여정과 스토리 전개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기둥무대는 1막 도입부에서, 회전무대는 2막 밴드 공연 부분이나 감옥 장면 등에서는 과도하게 사용돼 극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는 느낌도 있었다.
우리 전통 소리를 담아낸 무대답게 공연 곳곳에서 한국미를 살리려는 시도들이 눈에 띠었다. 주인공들이 유랑하는 전국 팔도 길은 한국화로 영상 처리돼 눈을 즐겁게 했다. ‘유봉’이 죽을 때 ‘송화’는 흰 끈을 ‘유봉’에게 동여매고 걷는다. 장면은 금방 상여를 떠올리게 했다. 또한 흰 옷을 입은 앙상블의 움직임을 통해 한국 고유의 장례 의식과 정서를 나타낸 시도도 인상깊었다.
송화와 동호는 서로 ‘나의 소리는 널 붙잡지 못해 / 우리의 소리는 길이 갈리어 만나지 못해 멀어지는 그 길’이라고 외친다. 하지만 결국 둘은 인생길 중간에서 만나게 된다. ‘그 길 어딘지 난 몰라도 언제나 너에게 간다 / 그 길이 달라도 언젠가 우리 같은 길에 만나 돌아오는 길’
뮤지컬 ‘서편제’는 대립과 화해, 원조와 변화, 내 것과 네 것은 결국 한 길 위에 있다는 것을 한(恨)의 과정으로 풀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