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타이틀을 자기브랜드로 정착시키며
클래식 공연을 매진으로 이끈 피아니스트
양성원은 ‘열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피아니스트다. 양성원의 연주를 관람한 관객들은 하나같이 그의 열정적인 모습을 치켜세운다. 무대를 압도하는 그의 카리스마는 이미 유명하다. 그러나 무대 밖 양성원은 사뭇 달랐다. 차분하면서도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인터뷰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피아니스트 양성원(31)은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국내외 권위 있는 콩쿠르에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고 유럽 현지 언론에 주목을 받으며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서울예고와 이화여대를 우수하게 졸업하고 도독하여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전문연주자 과정과 뒤셀도르프 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최우수로 졸업했다.
현재 양성원은 경북대학교 음대 외래교수, 오페라 음악감독, 전문연주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꾸준히 음악의 길을 걸어온 그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 독일 유학 중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클래식 본고장인 유럽의 문화와 역사, 정서를 몸소 익힐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얻음이다. 지난해 귀국하기까지 7년의 유학생활 동안, 예술에 대한 끝없는 갈증을 채울 수 있는 기회도 행운처럼 찾아왔다. 어떤 거대한 벽, 자기한계를 경험할 때마다 가까운 도시에 유명 피아니스트가 와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프로필을 보내고 연주를 들어달라고 청했다. 그분들은 편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신다. 스스럼없이 음악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자연스러운 대화 속에 생각지도 못한 음악적 방향 발견하고 영감을 얻었다.
- 그 중에서 가장 영향을 미친 선생님은?
많은 분들에게 다양한 예술적 자극을 받았기에 한 분으로 특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를 ‘예술과 음악의 깊이 있는 이해와 해석이 뛰어나고 화려한 테크닉으로 호소력과 열정을 겸비한 탁월한 피아니스트’라고 평해주신 세계적 피아니스트 게하르트 오피츠(Gerhard Oppitz)가 기억에 남는다. 흔쾌히 음악적 멘토가 되어주셨다. 또 독일에서의 첫 번째 스승인 Shoshana Rudiakov는 입학시험 다음날 ‘나와 같이 공부하지 않겠나?’ 라고 직접 연락을 받게 되면서 인연을 맺었다. 엄하셨던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따뜻했던 분이셨다.
선생님은 연주기회를 많이 주셨다. 연주가 얼마나 좋은 경험인지 알기 때문에 항상 감사했다. 졸업 후 서로의 소식이나 음악적 견해를 메일로 주고받았다. 2012년 겨울,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몇 주 전까지도... 메일을 보낼 때마다 존경을 표한 것이 다시 못 뵐 아쉬움에 그나마 위안이 된다.
▲피아니스트양성원
-그분이 하신 말씀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면?
특별히 구체적인 무언가를 지적하시진 않았다. 큰 틀에서 긍정적인 말들을 많이 해주셨는데, 예를 들면 “너의 뜨거운 그 열정을 절제의 미덕으로 세련시키고, 승화시켜야 한다." 라는 말, 자주 “넌 열정의 피아니스트”라고 말씀해주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항상 내 자신이 이성적이고 분석적이라고 생각했다. 또 연습하며 난관에 부딪힐 때, “누가 뭐라든지 네 스스로가 편하게 느끼는 음악이 너이고 너의 음악이다.”라는 말이 마음에 새겨져 있다. 정말 좋은 손을 가지고 있다는 말도 인상에 남는다. 음악가에게 있어 손이 좋다는 것은 곡을 소화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가졌다는 의미다. 이 말들이 가장 감사하고 기억에 남는다.
- 첫 무대에 대한 기억은?
첫무대의 특별한 기억 보다는 모든 무대가 다 기억에 남는다. 늘 무대 위에 서기전에는 부담감을 떨칠 수 없다. 그러다 무대에서면 마음이 평소보다 편안해 진다. 준비한 곡들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될지 걱정한다. 작은 실수도 없도록 집중해야하며,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이 되어야 하기에 긴장한다. 수천가지의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막상 무대에 올라서고 동시에 박수소리가 들려오면 오히려 평안을 느끼면서 이제는 ‘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주 중에는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잠재된 감정을 쏟아내는 느낌이다. 연주를 앞두고, 외출은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자제하며 힘든 상황 속에서 연습과 연구를 해야 되기 때문에 심적으로 부담감이 크지만, 무대에 오르면 그간의 시간이 씻겨 내려간다.
- 연습 때 느끼는 감정 중 기억에 남는 곡이 있나?
슈만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특히 이번 ‘냉정과 열정사이’ 투어에 준비한 곡 중 Kreisleriana Op.16은 분열된 슈만의 자아가 잘 반영된 작품 중 하나이다. 슈만의 음악인생의 큰 영향을 끼친, 라인강을 낀 뒤셀도르프는 아내 클라라와 마지막 사랑을 불태운 곳이다. 유학 중 그곳에 살았던 나는 이 곡에서 그의 영감을 느끼고자 했다. 이 곡은 정열적이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몰아치다가도 다시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잔잔히 진행되기를 반복한다. 이 곡을 연습하면서 감정의 변화에 대한 해석이 고민스러웠다. 그의 사랑이 테마로 만들어진 곡인만큼 내 자신의 내면과 조우하면서 감정을 이끌어내고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보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지면 슈만과 사랑에 대한 좀 더 다른 해석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작곡자에 대한 연구는 끊임없이 가져가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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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와 작품이 있다면?
좋아하는 작곡가와 작품은 늘 달라진다. 연주를 계기로, 새로운 작곡가를 접하고 더 많이 연구하며 탐구할수록, 어려우면서도 그만의 매력을 느끼게 되고 경의를 표하게 된다. 굳이 꼽으라면 베토벤. 그는 고전에서 낭만주의 음악으로 가는 가교역할을 하며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한 개혁가다. 그의 음악은 고전주의의 형식에 강렬하면서도 낭만주의적 색채를 담아냈다. 그런 면에서 냉정과 열정이 공존하는 그의 작품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 본인에게 피아노는 무엇인가?
피아노는 곧 ‘나’라고 생각한다. 생각과 음악적인 상상을 모두 전달할 수 있는 것이 피아노고 음악적인 생각은 곧 ‘나’다. 나는 피아노를 통해 청중들과 음악세계를 공유하면서 스스로 치유받기도 한다. 관객이 나의 연주를 듣고 감동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있어 행운이다. 연주가 끝나고 이내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하면 내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생각에 희열과 감사함을 느낀다. 공연 후 한번은 관객분이 내 연주의 마지막 곡에 이르러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는 말씀을 하시며 손을 꼬옥 잡아주셨는데, 그때의 기쁨은 전율을 일으킨다. 응원은 에너지가 된다. 가끔 내 기사를 검색할 때 연주후기들이 올라오는데,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관객들의 생각을 읽기도 한다. 모두 나에게 있어 자극제가 되기도 하고 치유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의 어두운 마음속에 빛을 보내는 것, 이것이 예술가의 의무이다.’라는 슈만의 말처럼 나 역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