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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수탉들의 싸움’...말로 빚은 ‘선택’의 싸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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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수탉들의 싸움’...말로 빚은 ‘선택’의 싸움판

정지혜 기자

기사입력 : 2014-07-18 14:47

7월 11일부터 8월 3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

▲백초현기자
▲백초현기자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이런 말을 했다. ‘삶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다.’ 결국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란 잠언 같은 명언이다. 연극 ‘수탉들의 싸움’ 속 한 남자 ‘존’도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그는 7년 간 만났던 동성애인 M과 새로이 만난 여자 W사이에 놓여 있다. 그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종용하고, M의 아버지 F까지 합세에 그를 몰아붙인다. 하지만 그는 정말 모른다.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 왜 선택해야 하는지. 텅 빈 팔각형의 좁은 무대에서 그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존은 황량한 폐허처럼 너덜거린다.

존과 그의 남자애인, 그의 여자애인이 저녁식사를 위해 한 자리에 모인다. 이 복잡한 관계의 저녁 식사는 한 편의 코미디다. M과 W는 존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힐난하기 바쁘고, 존은 두 사람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삽시간에 가열된 말들은 곧이라도 터질 다이너마이트처럼 빠르고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온다. ‘세상 제일가는 재미가 싸움구경’이라고 하듯, 이 수다스러운 광경은 한 마디로 말해 매우 ‘흥미진진’하다.

▲백초현기자
▲백초현기자


팔각형의 무대는 휑덩그레하다. 기댈 곳 없는 싸움판 위에서 인물들에게 주어진 무기는 오로지 ‘말’이다. 라운드를 알리는 종이 ‘땡땡’ 울리면,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비난을 쏟아낸다. 혹은 무대 주변을 돌며 상대가 내놓을 무기가 무엇인지 탐색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무대를 둘러싸고 네 개 구역으로 나뉘어 앉은 관객이 싸움판의 ‘구경꾼’으로서 작품에 참여하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A구역에 앉은 관객은 반대편 D구역의 관객을 마주본다. A구역의 관객은 눈앞에 서 있는 존의 뒷모습을 보면서 동시에 M의 앞모습과 맞은 편 관객의 얼굴을 함께 보게 된다. D구역의 관객은 그와는 정반대의 시야를 갖는다. 사면 객석은 위치에 따라 다른 감정선을 읽을 수 있게 만들고, 맞은편의 객석을 통해 개인들이 느끼는 감정을 다양하게 읽도록 만든다.

‘존’이 강요당하는 선택은 그 인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생각의 판을 키워보자. 무대는 사회다. 존은 한 개인이고, 그를 둘러싼 M, W, F는 세계의 가치관이자 사회의 단면을 대표하는 것들이다. 그들은 말한다. ‘대체 너는 뭐니?’, ‘어디에 속해 있니?’ 존의 대답은 한 가지다. ‘모르겠어요.’ M, W, F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존’을 어떠한 존재로 확정지으려 한다. M은 7년간의 시간과 사랑 혹은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W는 존이 여자인 자신을 선택한 것에 대해, F는 상처받은 아들을 지키려고 그의 선택을 강요한다.

사회가 정해놓은 분류는 개인의 의견을 묵살한다. 동시에 ‘다른 시각’을 철저히 무시한다. 그들에겐 오로지 ‘이것’ 아니면 ‘저것’의 분류만이 있을 뿐이다. 사회는 개인의 정체성을 정의하려 하고, 그 분류에 끼지 못하면 낙오된다. M, W, F는 사회가 규정한 틀로서 존에게 ‘너는 어디에 속할 것’이냐고 묻는다. 존은 그들의 말에 휘둘리면서도 쉽게 결정내리지 못한다. 그는 그 두 분류 모두에 속한다. 그렇다고 ‘바이 섹슈얼’이라는 용어로 그를 설명하기엔 애매하다. 그는 W외엔 여자에게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결국, 존은 성정체성의 문제를 넘어 ‘자신’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내’가 사회가 원하는 틀에 편승해 살아갈 것인지, 그것을 넘어 자신만의 능동적인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백초현기자
▲백초현기자


‘존’의 선택에서 중요한 것은 ‘남자’냐, ‘여자’냐가 아니다. 그에게는 ‘이 사람’이냐, ‘저 사람’이냐가 더 중요하다. 7년간 함께해 온 애인이 하필 남자이고, 자신을 너무나 잘 이해해 준 사람이 하필 여자였을 뿐이다. 이때, 구석에 내몰려진 존이 내뱉는 대사가 매우 인상적이다.

“게이, 스트레이트, 다 60년대에 만든 말 아니야? 너무 구식이야. (중략) 이제는 알겠어. 이제는 그 사람이 누구인가가 중요하다는 걸 알겠어. 남자냐 여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어떤 일을 하는가. 왜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았지? 평화, 사랑, 아버지 세대는 이런 가치를 강조하지 않았나? 근데 왜 지금 나한테 ‘내가 뭐랑 같이 자는가’가 ‘내가 누구랑 같이 자는가’ 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거지?”

이 몇 줄의 대사는 주제를 응축한다. 연극 ‘수탉들의 싸움’은 게이, 레즈비언 등의 ‘1차원적 구별’이 아닌 조금 더 나아가 ‘개인의 선택’에 대해 묻는다. 하지만 이 세계의 안에서 존은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한다. 존은 “들어올 때, 쿠션 갖고 불 끄고 들어 와”라는 M의 말에 끝까지 대답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선택일까, 반항일까, 침묵일까. 관객은 섬세하게 세공된 대사 속에서 나름대로의 ‘선택’을 내리게 될 것이다. ‘사고’와 ‘성찰’이라는 연극적 본질을 실컷 맛 볼 수 있는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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