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은 슬프다. 늘 항성 주변을 맴돌지만, 스스로 빛을 낼 수도 달아날 수도 없다. 행성은 평생 항성만을 따르며 묵묵히 주어진 길에 자신의 목숨줄을 풀어놓아야 한다. 단지 이것은 우주만의 일로 볼 수 있을까. 그 거대한 우주를 끌어당겨, 우리의 안으로 품으면 이 슬픈 진실은 곧 ‘가족과 나’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연극 ‘유리동물원’은 일가족이 겪는 일상적인 비극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잊기 위해 추억하는 ‘추억극’
연극 ‘유리동물원’은 테네시 윌리엄즈가 1944년 발표한 자전적인 희곡이다. 실제 테네시 윌리엄즈는 이 작품의 톰처럼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구두 공장에서 일한 적 있다. 그의 누이 역시 극 속의 ‘로라’처럼 신경이 쇠약한 사람이었다. 이 작품이 극도로 예민하게 일상의 감정들을 포착해 내는 것은, 그가 실재했던 삶을 붙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작품은 1930년대 경제 공황기를 배경으로 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하나씩 결함을 갖고 있다. 어머니 아만다는 화려한 과거를 가진 귀족 출신으로,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여 산다. 딸 로라는 한쪽 다리를 절며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숨 쉬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토하려고 하는 연약한 처녀다. 그녀의 삶은 오로지 유리 공예품을 모으는데 맞춰져 있다. 아들 톰은 이 작품의 화자이자, 등장인물이다. 그는 가족에게 얽매인 현재를 벗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파 한다.
이 희곡은 마치 직물처럼 짜여있다. 경제대공황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거대하게 씨실을 잡으면, 그 위로 위태로운 가족 사회가 날실을 잡는다. 가족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끊어질 듯 약한 로라를 주변으로 아만다와 톰의 대립이 복잡하고 단단하게 얽힌다. 인물들 역시 자유와 억압, 과거와 미래, 두려움과 기대 사이를 오가며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아만다와톰의대립_명동예술극장
연극 ‘유리동물원’의 카타르시스는 동시대의 합일에서 온다. 톰은 ‘죽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외치면서도, 죽도록 가기 싫은 창고를 기어이 일어나 출근한다. 하루 종일 구두 공장에서 매달려 번 65달러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그는 숨어서 시를 쓰고, 감출 수 없는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늦은 시각까지 영화와 술에 매달린다. 아만다는 그런 톰을 두고 ‘넌 너밖에 몰라’, ‘어쩜 그렇게 이기적이니’라는 말로 그의 현실을 더욱 강력하게 봉쇄한다. 이 모자의 갈등은 1930년대의 틀을 입고 있지만, 현재와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모든 관계들은 풀리지 않은 복잡한 수학 문제처럼, 항상과 행성처럼 늘 같은 지점을 뱅뱅 돌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늘어놓을 뿐이다.
작품은 별다른 사건 없이도 긴장을 놓치지 않는다. 인물들은 로라를 축으로 어머니 아만다와 아들 톰이 맞부닥친다. 로라가 모으는 유리 공예품처럼 ‘숨만 쉬어도 부서질 것 같은’ 이 가족은 깨어진 유리 조각처럼 첨예하게 대립한다. 특히, 어느 세대나 겪는 생활 속 갈등은 관객의 공감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며 집중도를 높인다. 두 사람 사이에서 떨고 있는 로라의 감정은 곧 관객이 느끼는 불안으로 치환되며, 더욱 깊은 심연 속으로 우리를 채찍질한다.
▲로라와짐의한때_명동예술극장
희곡에서 톰의 손님으로 등장하는 짐은 ‘현실’의 상징이다. 톰이 다니고 있는 창고의 동료로, 로라에게 소개시켜 줄 짝으로 이들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기실 별 볼일 없는 인물이지만 불안한 이 가족에겐 구원의 빛으로 여겨진다. 어머니에게는 톰의 부재를 메워줄 대체원으로, 톰에겐 떠날 수 있는 기회로, 로라에겐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품게 한다. 하지만 그는 로라의 유리 공예품을 부수고, 칼날처럼 깊은 키스로 상처만을 낸 채 자리를 떠난다. 그는 현실로서 왔다가 떠나 버릴 뿐 그 어느 것의 구원도 되지 못한다.
연출가 한태숙은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동시대성을 탈환했다. 고전을 현시대의 이야기로 발바꿈시키는 데 탁월한 한태숙의 능력은 이번 공연에서도 빛을 발했다. 비뚜름하게 경사진 무대는 시대와 가족의 권태와 아슬아슬함을, 낮은 조도의 조명과 은은한 색감은 현실의 암울함을 더했다. 몽환적이고 비감한 첼로의 선율은 시대에 남겨진 한 가족의 비극을 울적하게 어루만진다.
배우들은 ‘연극 무대’의 진수를 연기했다. 아만다 역의 김성녀는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는 어머니를 때로는 푼수처럼, 때로는 편집증적으로 연기했다. 로라 역의 정운선은 바스라질 것처럼 연약하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톰 역의 이승주는 테네시 윌리엄즈의 현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위태롭게 휘청이는 청년을 압도적인 연기로 체화했다. 짐 역의 심완준은 명연기 속에서도 위축되지 않은 연기를 선보였다.
테네시 윌리엄즈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 내면의 저 깊은 곳을, 생활에서 탄생하고 죽어가는 일가족의 감정을 여과 없이 풀어낸다. 톰은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할 때 못 박는다. ‘이 연극은 추억극’이라고. 관객은 슬퍼해야 한다. 이 비참하고 비극적인 가족을, 우리와 닮아 있는 시대를 아파하고 유감스러워 해야 한다. 그리고 알아야 한다. 추억은 때론 기억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잊기 위해 하기도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