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부터 VR(Virtual Reality)기술이 화두로 떠오른 상태다. VR은 새 시대를 이끌어갈 대세 기술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VR콘텐츠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직 이렇다 할 콘텐츠도 VR콘텐츠도 보이지 않는다. VR 콘텐츠가 귀에는 익숙하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
2015년 10월, 왕십리 CGV에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하늘을 걷는 남자> VR 프로모션이 열렸다. 모니터,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과 VR전용 헤드셋(Head Mounted Display, 이하 HMD)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HMD를 착용한 관람자는 월드트레이드센터 옥상에 오른 <하늘을 걷는 남자> 펠리페 페팃(조셉 고든 레빗)이 된다. 눈앞에는 맨해튼의 전경이 보인다. 발 밑은 412m높이의 아득한 낭떠러지다. 멋진 풍경에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면, 발 아래로 철근 하나가 쑥 밀려나온다. 관람자는 철근을 따라 걷는다. 그와 동시에 눈앞의 영상도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 관람자는 그저 안경하나를 썼을 뿐인데 순식간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VR은 <하늘을 걷는 남자> 펠리페 페팃의 도전을 실감나게 전달했다. 국내에서 영화와 VR의 접목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하늘을 걷는 남자> VR 영화는 신선한 시도로 평가받는다. 이 프로모션은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호주에서도 진행됐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이뤄졌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국내에서 이 VR을 시연할 수 있는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의 VR 디바이스 ‘프로젝트 모피어스’가 정식 론칭되지 않았다. 때문에 VR영화 프로모션은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했다.
■ 쏟아지는 VR 기기
국내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지만, 해외에서는 VR 관련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소니, 닌텐도, HTC 등 유명 기업 뿐만 아니라 관련 기기 스타트업 회사들도 VR관련 제품과 사업계획을 내고 있다.
Oculus Lift
페이스북과 구글은 VR 생태계 선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오큘러스 VR(Oculus VR)을 인수했다. 기존 HMD는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한계를 허물고 파격적인 가격으로 등장한 VR디바이스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를 만들었다. 곧 시판용 제품과 VR 플랫폼 ‘오큘러스 스토어’를 선보일 것이라 밝혔다. 구글은 스마트폰에 넣어 사용할 수 있는 단순한 형태의 VR 기기 ‘카드보드(Cardboard)’ 제작방법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구글은 유저들이 손쉽고 저렴하게 VR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VR 생태계 선점을 위해 중국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의 휴대폰 제조업체 HTC는 게임업체 밸브(Valve)와 함께 VR 시스템 ‘바이브(VIVE)’를 만들었다. 온라인동영상 업체 베이징바오펑모징도 저가 VR기기 ‘바오펑모징’을 출시했다. 세계 최고의 게임 매출을 올리는 ‘텐센트’도 최근 ‘미니스테이션’이라는 VR시스템을 판매할 것이라 밝혔다.
◼︎ 국내 VR, 지금부터 시작
갤럭시 노트4에 결합해 사용 가능한 '기어 VR'
해외 많은 기업들은 VR 시장 선점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VR 상황은 어떨까? 현재 국내 대기업들은 해외 기업들의 기술력을 이전받아 자사 제품과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오큘러스와 함께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4’에 결합해 사용할 수 있는 ‘기어 VR’을 선보였다. ‘기어 VR’은 스마트폰에 저장된 영상 콘텐츠를 VR 기기를 통해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다. LG전자는 구글의 카드보드를 활용해 만든 스마트폰 G3 전용 HMD ‘VR for G3’을 제작해 프로모션용으로 사용했다. VR 관련 행사도 눈에 띈다. ‘지스타2015’는 VR을 전면에 내세웠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VR, HTC의 바이브 등 VR 관련 신제품들을 소개했다.
기관들도 VR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서는 가상현실콘텐츠 발굴지원 사업, 실감미디어산업 R&D 기반구축 사업 등 VR관련 사업을 진행 중이다. 영화계의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부산영상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련 공공기관도 VR 세미나를 열어 영화 관계자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해 10월 벡스코에서는 부산국제필름커미션∙영화산업박람회(이하 비프콤)의 기술 세미나 ‘VR과 영화의 시대를 열다’가 열렸다. 세미나에서 VR 영화 제작에 관심이 있는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국내외의 VR 영화의 제작 사례와 제작 방식 등을 이야기했다.이번 세미나를 기획한 부산영상위원회 ‘부산 3D프로적션센터-디지털베이’의 정희철 센터장은 “초고속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5G 시대를 맞아 콘텐츠 분야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것이 VR이다. 세계적으로도 VR플랫폼과 영화가 만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상황을 세미나를 통해 알아보자”며 기획 취지를 밝혔다. 그는 영화 분야에서 VR이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직 극장 중심의 영화 관람 문화가 일반적이고 HMD기기도 보편화 되지 않기 때문이다.”비프콤 기술 세미나에 참석한 김휘 감독은 " 무엇보다 영화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관계자들 조차도 HMD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게 충무로의 현재”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전우열 '타임 패러독스'
아직은 척박한 환경이지만 VR 단편 영화들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 전우열 감독의 <타임 패러독스>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는 목격자의 시선으로 살인사건의 진행과정을 관찰한다. 3분짜리 360도 3D VR 영화로 관람자가 고개를 움직여 시간대별로 사건을 쫓을 수 있게 구성됐다.
VR 영화 제작은 어려워 보이지만, 제작방식의 특수성만 이해한다면 쉽고 저렴하게 제작이 가능하다. VR 영화들은 액션캠(몸이나 장비에 부착해 사용자의 시선에서 주변을 역동적으로 촬영할 때 쓰는 카메라) 여러 대를 카메라 고정장치인 ‘리그’에 달아 촬영한다. 전문 프로그램을 통해 촬영된 영상 데이터를 각각 자리에 배치해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스티칭’과정을 거치면 180도, 360도로 촬영된 VR 영상물이 만들어진다. 이 영상물을 웹이나 핸드폰에 저장해두면 개인용 HMD로 감상할 수 있다.
◼︎ VR기술이 아니라, 콘텐츠에 집중하라
촬영 기술과 기기들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콘텐츠다. VR 콘텐츠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VR 공연 콘텐츠를 제작했다. CNN은 민주당 대선 후보 토론을 VR로 생중계 했다.
'Birdly'
2012년 선댄스영화제에서는 오큘러스의 창업자 파머 러키가 VR 단편영화 <로스트(Lost)>를 발표한지 3년 만에 ‘뉴프론티어’ 부문에서 10편의 VR 영화가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화제작은 스위스 취리히 대학 막스 라이너 교수가 만든 다중감각 비행 시뮬레이터 <버들리(Birdly)>였다. 이 작품은 오큘러스 리프트를 착용하고 모션 장비에 올라 감상하는 콘텐츠다. 마치 새가 되어 샌프란시스코의 하늘을 나는 듯한 체험을 극대화 시킨다. 이 콘텐츠는 바람을 느끼게 하는 팬과 손으로 날갯짓을 할 수있도록 만든 장치를 갖췄다. 뉴프론티어 부문은 IT 기업, 영화 관계자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마무리 됐다.이후 선댄스 재단은 라이브액션 VR 전문기업 ‘전트’와 손을 잡고 ‘뉴프론티어/전트 VR 레지던시’ 프그램을 개설했다. 이 프로그램은 6개월간의 전폭적인 기술적 지원이 이뤄져 향후 미국 VR 영화의 확장을 기대하게 한다.
국내 많은 관계자들은 몰입감 극대화의 이유로 VR 콘텐츠가 성인물, 공포물 위주로 흘러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이는 VR콘텐츠를 대중화된 산업으로 끌어들이기에 부족하다. 제대로된 VR영화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가? 기존 영화작법과 VR영화의 작법에는 차이가 있다. VR은 관람자의 시선이 180도에서 360도로 넓어진다. 시선이 고정되지 않아 정교한 촬영 프로세스가 요구된다. 기술 플랫폼에 맞는 정교한 기획과 관람자의 감성적 측면까지 계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