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손정호 기자]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계 영국 소설가다. 우리나라나 세계적으로 그렇게 인지도가 높은 소설가는 아니었다. 나도 그의 소설을 읽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의 발견은 최근 노벨문학상이 시도해온 변화에 대한 희망을 가장 문학적 선택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보내지 마’는 형식적으로 분류하자면 SF 소설이다. 인간의 장기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된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복제인간들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SF나 환상소설에서 보이는 장르적 요소가 거의 없다. 매우 서정적인 사실주의 작품이다. 복제인간 여성이 화자다. 헤일셤이라는 복제인간들의 학교에서 생활한 동료들과의 사랑과 우정을 그들의 흔들리는 영혼으로 표현하고 있다. 복제인간들은 헤일셤에서 인간의 삶, 기증이라는 장기이식 행위 등에 대해서 배운다. 문제는 이 복제인간들이 제1의 인간과 별다를 바 없이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한다는 점이다. 우정이 쌓인 여성 복제인간들끼리 여행을 가서 바닷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복제인간들은 3~4번에 걸친 장기이식인 기증을 연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점에 희망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기증을 연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장기이식을 위해 자신을 복제하게 만든 제1 인간을 바라보기도 한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1982년 첫 소설인 ‘창백한 언덕 풍경’으로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 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일본의 황량한 피폭 상황을 투명하고 절제된 감정으로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나를 보내지 마’는 전후세대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피폭에 대한 피해의식과 인간성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는 것으로도 읽힌다. 우리 입장에서야 일본의 피폭이 그들의 전쟁범죄에 비해 그렇게 대단한 것으로 생각되지 않을 수도 있고, 원폭 후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버렸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시 성찰이 필요하지만 식민지 경험이 없는 일본인들에게 원폭은 서구 백인들이 자신들에게 가한 끔찍한 행위로 먼저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일본 원폭의 전후 배경과 우리나라에 대한 성찰 등을 제외해도, 원폭에 대한 인간적 고민은 필요하고 가능해 보인다. ‘나를 보내지 마’의 제1 인간들은 원자폭탄을 투하한 백인들, 복제인간들은 자신들 입장에서는 별 생각 없이 비극을 맞이한 일본인 자신을 상징적으로 그리면서 현재 존재하는 우리 세상의 일그러진 차별적 규칙들에 들꽃을 들어 올리는 저항으로도 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SF적 알고리즘보다 이런 역사나 인문학적 알고리즘을 적용해 보는 것도 일견 타당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나를 보내지 마’에 서정적 은유를 동원한 풍경과 감정에 대한 묘사가 적다는 점이 아쉬웠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저녁에 거실로 퍼지는 아스러지는 햇살의 간지럼처럼 아름답고 투명하지만 매우 절제된 어떤 상태를 건조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조용히 읊조리는 것 같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나를 보내지 마’는 이런 문장으로 끝난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나는 흐느끼지도, 자제력을 잃지도 않았다. 다만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차로 돌아가 가야 할 곳을 향해 출발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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