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이민우 기자] 러시아 월드컵이 본격적인 토너먼트 돌입으로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세계 최고의 스타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끌었던 아르헨티나·포르투갈이 16강에서 고배를 마신 가운데 흥미로운 대결이 또 하나 펼쳐진다. ‘안방 마님’ 개최국 러시아와 ‘과거 세계 최강’ 무적함대 스페인이 16강 3번째 경기에서 맞붙는다.
평소 같으면 손쉽게 스페인의 승리를 점치겠지만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르다. 러시아가 개최국 어드벤테이지를 등에 업고 조별 리그에서 승승장구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개최국임에도 ‘피파 랭킹 최하위권’ ’조기 탈락 예상’ 등 수모 섞인 평가를 당한 것과 천지차이다. 러시아가 열띤 응원과 개최국 어드벤테이지를 밑천 삼아 무적함대 스페인을 침몰시킬 수 있을지 눈여겨봐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러시아와 스페인 사이에는 기묘한 ‘10년 전의 인연’이 있다.
(사진=러시아·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 러시아가 기억하는 10년 전 ‘향수’와 ‘굴욕’
러시아는 10년 전에 경험한 유로 2008 대회에 대한 ‘향수’와 ‘굴욕’을 함께 가지고 있다.
당시 러시아는 우리나라에도 익숙한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유로 2008' 4강에 진출했다. 안드레이 아르샤빈, 유리 지르코프, 로만 파블류첸코 등 러시아 축구를 황금기로 인도한 스타가 탄생했다. 무적함대 스페인·전 대회 디펜딩 챔피언 그리스·북유럽 전통의 강호 스웨덴이 속한 어려운 조에서도 2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8강 토너먼트에서는 폭발적인 경기력을 과시한 네덜란드를 연장전까지 가며 3-1로 눌렀다.
공교롭게도 돌풍을 일으킨 당시 러시아가 대회에서 유일하게 고전한 상대가 유로 2008 우승팀이자 이번 상대인 스페인이다. 러시아는 10년 전에 조별리그에서 4-1로 대패를 당하는가 하면 결승 문턱인 4강에서도 3-0 대패를 당했다. 러시아에게는 4강도 충분히 만족할 성적이지만 자랑스러운 돌풍에 고춧가루를 매번 뿌린 스페인이 곱게 보일 수 없다. 러시아는 10년 전 당한 굴욕을 씻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자세로 경기에 임할 가능성이 높다.
(사진=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한편, 유로 2008 당시와 현재 러시아 대표팀은 선수 구성에서 닮은 구석이 많다. 거의 평행이론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대표팀 전체 선수가 1명을 제외하고 러시아 리그에서 활약중이며 핵심 선수도 상당히 비슷하다.
조별 리그에서 깜짝 3골을 기록한 데니스 체리셰프는 유로 2008 당시 유리 지르코프와 닮았다. 유리 지르코프는 현재 월드컵에 출전해 러시아 대표팀 왼쪽 풀백을 맡고 있지만 전성기에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킥력을 뽐내는 측면 윙어였다.
알렉산드르 골로빈은 러시아 최고의 축구 스타였던 안드레이 아르샤빈과 비슷하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러시아 대표팀을 진두지휘한 점과 강력한 오른발 슈팅과 감각적인 볼 컨트롤을 가진 것을 공통점으로 가지고 있다. 심지어 알렉산드르 골로빈과 안드레이 아르샤빈은 대회 직전 시즌에 똑같은 27경기에 출장했고 리그에서 골마저 5골과 6골씩 비슷하게 기록했다. 생일까지 알렉산드르 골로빈은 5월 30일생, 안드레이 아르샤빈은 5월 29일생으로 하루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현재 러시아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는 아르템 주바는 유로 2008 당시 로만 파블류첸코처럼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린 유형이다. 아르템 주바는 처음 러시아 주전 공격수로 낙점된 표도르 스몰로프가 조별 리그 1차전에서 부진했던 것을 틈타 교체 투입돼 득점에 성공했다. 로만 파블류첸코가 유로 2008 당시 원래 주전 공격수였던 파벨 포그렙냐크의 부상을 틈타 활약하며 주전 공격수로 발돋움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 다비드 데헤아와 이고르 아킨페프, '제2의 야신' 대결
(사진=러시아·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러시아와 스페인의 16강전에서 눈여겨봐야 할 다른 점은 골키퍼 대결이다. 다비드 데헤아와 이고르 아킨페프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수문장이자 팀 최후의 방어막이다. 여기에 둘 다 야신의 후계자라고 불리는 공통점이 있다. 이고르 아킨페프는 어릴 때 부터 러시아가 ‘제2의 야신’을 목표로 육성한 골키퍼다. 다비드 데헤아는 매번 환상적인 선방 쇼와 클럽·국제대회를 가리지 않는 방어력으로 실질적인 ‘현시대의 야신’에 가깝다.
기본적인 커리어나 위상을 생각하면 다비드 데헤아와 이고르 아페프의 비교는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러시아 월드컵 조별 예선 동안은 두 골키퍼 간에 큰 차이가 없었다. 실점도 똑같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선방 횟수에서는 이고르 아킨페프가 다비드 데헤아를 앞선다.
다비드 데헤아는 조별 예선 포르투갈과 경기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하는 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펼쳤던 압도적인 방어력을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수비진의 중추인 헤라르드 피케와 세르히오 라모스도 조별 예선 경기에서 허용한 실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더 큰 부담을 다비드 데헤아에게 지우고 있다. 개최국과 맞붙는 경기이기 때문에 다비드 데헤아를 비롯한 스페인 수비진을 살린 VAR에도 유리한 상황을 기대하긴 힘들다. 다비드 데헤아의 경기력 회복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고르 아킨페프는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기름 손’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대한민국 축구팬들도 잘 기억하듯, 대한민국과 조별 예선 경기에서 이근호가 찬 슛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어이없게 골로 허용했다. 러시아 월드컵 전 최종점검에 가까운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최악의 경기력을 보이며 ‘기름 손’이라는 이름을 다시 뒤집어썼다.
다행히 이고르 아킨페프는 러시아 월드컵에서 나름 우수한 경기를 하고 있다. 개막전인 사우디아라비아와 경기에서는 팀 간 실력 차가 큰 탓에 위험한 상황이 없었다. 이집트와 경기에서는 1실점을 했지만 세르게이 익나세비치와 수비진을 잘 조율하며 더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우루과이와 마지막 조별예선 경기에서는 3실점을 허용했으나 이미 16강 진출을 확정한 탓에 수비진이 실수가 잦았다. 그럼에도 이고르 아킨페프는 4차례나 선방을 기록하며 거의 홀로 우루과이 공격진을 막아섰다.
‘제2의 야신’들이 펼치는 놀라운 선방 쇼 그리고 이고르 아킨페프가 ‘기름 손’의 오명을 다비드 데헤아와 스페인을 상대로 씻어낼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좋은 관전 포인트다.
◇ 주목할 선수 : 브라질산 오른쪽 방패, 마리우 페르난데스
러시아 선발 명단에는 상당히 색다른 이름이 있다. 러시아의 오른쪽 측면을 책임지는 풀백 '마리우 페르난데스'이다. 마리우 페르난데스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러시아 출신이 아니다. 브라질 출신으로 한 경기지만 브라질 대표팀 경험까지 있다.
마리우 페르난데스는 2012년부터 CSKA 모스크바에 입단해 지금까지 러시아 생활을 하고 있다. CSKA 모스크바의 주전 선수로 활약하면서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에서 실력을 쌓았다. 이후 자신을 성장시켜준 러시아에 귀화를 희망했고, 2016년 대통령령에 의해 러시아 시민권을 획득했다.
현재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오른쪽 풀백으로 활약하며 입지를 다지고 있다. 지난 시즌에는 소속팀 CSKA 모스크바의 리그 준우승에 공헌했다.
(사진=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마리우 페르난데스는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조별예선 두 경기에 선발 출장해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이집트와 경기에서는 모하메드 살라를 잘 막아냈고 후반전에 멋진 오버래핑에 이은 칼 같은 컷백 크로스로 데니스 체리셰프의 결승 골 득점을 만들어냈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조별 예선 종료 이후 다수의 스포츠 매체가 선정한 조별 리그 베스트 11에 뽑히기도 했다.
마리우 페르난데스가 스페인전에서 상대할 선수는 이스코와 호르디 알바다. 두 선수 모두 강력한 공격력을 지닌 선수다. 특히 이스코는 현 스페인 대표팀 공격의 축 중 하나로 활약하고 있다. 조별 예선 경기 내내 엄청난 드리블 돌파와 찬스 메이킹을 선보였고 모로코전에서는 전반 13분 만에 선제골을 기록했다. 강력한 기술을 갖춘 이스코와 호르디 알바를 상대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마리우 페르난데스에게는 강력한 피지컬이 있다. 풀백 중에서도 큰 189cm 80kg이라는 건장한 체격을 보유하고 있다. 마리오 페르난데스가 상대하는 두 선수가 왜소한 체격을 가진 점을 생각하면 바짝 달라붙어 피지컬한 수비를 하는 방법도 쓸 수 있다. 여기에 마리오 페르난데스는 큰 키에도 굉장히 빠른 스피드를 가졌다. 충분히 이스코와 호르디 알바를 막아내며 스페인의 예봉을 꺾는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