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시간은 변함없이 흐르고, 딸 아이는 어느 덧 34개월이 되었다. 세 번의 여름을 나고 네 번째 겨울을 맞이하게 되는동안 아이는 계절의 변화만큼 변화무쌍하게 성장했다. 그 성장의 속도만큼 나의 몸과 마음도 함께 발을맞춰주면 좋으련만 육아는 항상 후회와 아쉬움의 연속이다. 이제 제법 말을 조리있게 하는 딸은 거침없이 감정을 표현한다. 단순히 좋고 싫음을 떠나 아이의 말 속에 솔직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감정과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 만큼 당장 어제 좋아했던 일들이 오늘에는 무언가 미묘하게 다른 상황으로 변화된다. 작은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순간 아이와 나는 덜컹거리기 시작한다.
주 양육자가 된지 8개월, 아빠로서 함께 한 3년의 시간. 나는 언제쯤 이 작은 생명체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걸까.
통역이 필요 없는 딸의 환한 미소 (사진=촉뮤직 엔터테인먼트)
돌아보면 딸이 갓난 아기였던 때부터 딸과 아내, 나 세 사람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느라 참 많이 고생했다. 아이의 신호라고는 ‘응애‘가 전부였고, 우리 부부는 마치 스무고개를 하듯 정답을 찾느라 숱한 밤을 지새웠다. 단순해 보이는 울음 하나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 건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뒤였다. 그렇게 아이와 우리가 서로에게 익숙해 질때 쯤, 아이는 한 발짝 더 자라있었다. 아내와 난 다시금 분주히 통역기를 돌린다.
그래, 그랬었다. 우리들 사이엔 통역이 필요했다.
아이가 어느 덧 자라 엄마 아빠의 말을 이해하고 따라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움과 감동의 연속이었다. 아이가 언어를 습득하고 체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경외감마저 들게 했다.
언어가 통일되고 난 뒤 부터는 모든 일이 수월해졌다. 배가 고픈건지, 잠이 오는건지, 무얼 하고 싶은지 욕구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이를 태우고 혼자 운전을 할 때 불안하고 조급했던 시간도 어느 새 대화로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어린이집에서 돌아와 차를 주차장에 주차하려 하는데 아이가 갑작스레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한 나는 어디가 불편한지부터 시작해 이러저리 물어봤지만 아이의 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한참을 어르고 달래며 동네를 몇 바퀴 더 돌고 나서야 울다 지친 아이를 집에 데려올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아이는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이유없이 맹렬하게 울어댔다. 두렵고 힘겨운 시간이었다.
하루는 어린이집이 끝날 시간에 맞춰 벨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르게 원장 선생님께서 아이보다 먼저 나오셨다. 난 전달사항이 있나보다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레 딸의 변화에 대해 얘기하게 됐다.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를 듣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희진이가 많이 힘들거에요. 하루 아침에 많은 것들이 바뀌었잖아요. 거기에다 아빠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고 싶은 욕구도 강한 아이에요. 힘이드는데 아빠를 실망시키긴 싫다보니 참아내는 과정에서 버거웠던 것 같아요.”
그랬다. 아이가 힘들어하기 시작한 그 시기는 정확하게 우리가 이사를 왔다. 어린이집이 바뀌고, 워킹맘인 엄마의 빈자리가 커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환경에 아내와 내가 허둥대던 사이 아이는 외롭고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왜 몰랐을까.
“희진이가 아빠를 참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요. 아빠 얘기를 정말많이 해요. 그 사랑의 크기만큼 잘 해내고 싶어하다보니 실수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 같아요. 마음껏 실수하게 해주시고 응석부리게 해주세요. 아직한창 그래야 할 나이니까요.”
아빠의 육아는 유연하지 못했다. 한 없이 품어주던 엄마와 달리 고지식한 나는 실수에 관대하지 못했다. 칭찬과 격려에 인색했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지금 돌아보면 아이는 내게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딸 아이가 표현하는 수 많은 감정과 메세지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아이의 언어가 단순히 말 뿐만아니라 온 몸과 마음으로 표현되는 것임을 알아가고 있다. 조금 더 살을 부대끼려 노력하고, 조금 더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려 한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딸과 나 사이에 통역기는 필요없어 지지 않을까.
나훈아 – 사랑 커버이미지
# 싱어송라이터 조제의 띵곡 : 나훈아 – 사랑 (1983년, 4집 - 사랑/하얀새/18세순이)
트로트의 황제, 살아있는 가요계의 전설. 1970년대 남진과 함께 시대를 양분했던 불세출의 트로트가수 나훈아.
나훈아의 수많은 곡 중에서도 ‘사랑‘은 저의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시는 곡입니다. 어릴 때부터 참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그 땐 그저 어른들의 사랑 얘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찬찬히 들어보니 제 딸에게 전해주고 싶은 제 마음과 어찌 그리 닮아있는 걸까요?
이 세상에 하나 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보고 또 보고 또 쳐다봐도
싫지 않은 내 사람아
▶글쓴이 조제는 촉뮤직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뮤지션으로서 2005년 밴드 필베이의 보컬로 데뷔했다. 현재 밴드 모노크롬카세트의 보컬, 싱어송라이터 조제, 작사가로 활동 중이다. 문예창작학, 와인양조학을 전공하는 등 음악 외에도 와인, 요리, 문학 등 다양한 재능과 색채를 지닌 아티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