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국회, 정부의 행정입법 사전 감시·통제 어려워...법령안 조항 수 만큼 정부 권한 커져
[사진제공=연합뉴스]
[더파워=함광진 행정사] 정부는 지난 2010년 세종시 이전기관 소속 공무원의 세종시 정주를 돕기 위해 아파트 특별공급제도를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담아 시행했다.
하지만 최근 관세평가분류원의 부정 특공 문제가 드러나자 정부는 특공 제도를 폐지하겠다며 관련 시행규칙을 개정하는 입법 절차에 들어갔다.
입법권은 국회의 고유 권한인데, 정부도 법령인 규칙을 만들고 변경하는 행정입법을 할 수 있을까? 행정입법은 삼권분립 정신과 국회의 입법권을 훼손하지는 않을까?
우리나라의 정부형태는 대통령제다. 입법·사법·행정 삼권분립을 기반으로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기본적으로 국회는 법을 만들고 행정부는 법을 집행하며 사법부는 법을 해석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국회가 행정부에 입법권의 일부를 위임하고 있고 이에 따른 행정부의 행정입법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헌법 제40조에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규정해 국회에 입법권을 부여했다. 하지만 국회가 입법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독점하지는 않는다. 제52조에 따라 각 정부 부처는 소관 업무에 관한 정책결정과 집행을 위해 법률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한다.
제75조를 근거로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해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에 관해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 대통령령이란 국회에서 만들어진 법률의 시행을 위해 각 정부 부처에서 만드는 ‘시행령’이다.
제95조에 따라 국무총리 또는 정부부처의 장관 등은 소관 사무에 관해 법률이나 대통령령의 위임 또는 직권으로 총리령 또는 부령을 발할 수 있다. 총리령과 부령은 법률과 대통령령의 시행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시행규칙’이라고 하며 총리 소속기관이 만드는 것을 ‘총리령’, 각 부처에서 마련하는 것을 ‘부령’이라 한다.
이처럼 헌법은 국회의 입법권 외에 대통령, 국무총리 및 중앙부처의 장관 등이 헌법과 법률의 범위에서 일정한 규범을 만들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무적으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정부 부처의 공무원이 어떤 문제의 해결이나 국정운영을 위해 관련 정책을 결정하면 국회의원의 보좌진이나 정부의 실무자는 그 정책의 시행을 위해 근거 법령을 만들 필요가 있는지 먼저 검토한다.
가령 정부가 코로나19 확대 예방을 위해 ‘5인 이상 집합 금지’ 같은 ‘행정조치’만으로도 해당 정책의 시행이 가능하다면 새로운 근거 법령을 만들 필요가 없다. 하지만 헌법이나 개별 법률에서 법률에 정하도록 한 내용과 관련한 정책이라면 근거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
일례로 헌법 제23조에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다만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공공의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도 ‘법률’로써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즉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거나 권리를 제한, 의무를 부과하는 정책의 시행을 위해서는 반드시 국회에서 근거 법률을 만들고 그에 따라야만 한다.
행정입법은 법률에서 위임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위 법률이 위임한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가 빈번하다. 법률의 위임이 없음에도 시행령에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경우, 상위 법률의 입법 취지 및 내용과 불합치 하는 경우, 행정입법을 제정 또는 개정할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 법률에서 위임받은 사항을 시행령에 규정하지 않고 하위 법규에 그대로 재위임하는 경우 등이다.
국회에서 아무리 좋은 법률을 만들어도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를 반영하지 못하거나 훼손한다면 국회의 입법 의도대로 집행될 수 없다.
‘4․16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및 안전 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국회에서 만든 ‘세월호진상규명법’ 제15조 제1항에는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직원의 정원을 120명 이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정부는 ‘시행령의 시행 후 6개월까지 위원회 정원을 90명’으로 축소하도록 하는 시행령을 만들어 공포했다. 상위 법률의 내용과 불합치한다.
우리나라는 정부의 행정입법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행정입법의 국회제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국회법 제98조의2에 따라 정부 부처의 장관 등 기관장은 대통령령·총리령·부령·훈령·예규·고시 등이 제정·개정 또는 폐지되었을 때에는 10일 이내에 이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상임위원회는 법률 위반 여부 등을 검토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검토 결과를 본회의에 보고하고 본회의 의결로 이를 처리하고 정부에 보낸다. 정부는 송부 받은 검토 결과에 대한 처리 여부를 검토하고 그 처리결과를 다시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행정입법을 통해 규정된 법령의 내용이 헌법이나 법률 또는 상위법령에 위반된다고 해서 바로 무효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국민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다든지 불편을 겪다 문제 제기를 해서 법원이나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또는 상위법 위반 판정이 있을 때까지 국민은 그저 따르고 지켜야 한다.
국민이나 국회가 사전에 행정입법 감시하고 통제할 수 없는 구조다. 국민이 입법 전문가도 아니고 행정입법 매건마다 위법성을 다툴 여유도 없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한해 총 7436건의 법률 제·개정안이 국회에 접수됐다. 이중 정부 제출 건수는 317건이다. 법제처는 매년 중앙행정기관으로부터 입법수요를 파악하고 입법계획을 수립해 국무회의에 보고한 후 국민에게 알린다. 법제처 인터넷 홈페이지에 따르면 2021년 정부가 국회에 제출 예정인 법률안은 총 210건이다.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법률의 개수 및 개정 건수가 늘어나면 그에 따라 집행하는데 필요한 시행령, 시행규칙 등의 행정입법도 증가한다. 2021년 6월 현재 시행되고 있는 법률은 1545개이며 이를 집행하기 위한 대통령령은 1819개이다. 2010년 대비 각각 363개, 393개가 늘었다.
이 법령안에 담겨있는 조항수 만큼 정부의 권한과 힘은 커진다고 할 수 있으며 국민이 따라야 할 의무나 규제도 많아진다. 늘어나는 법령수에 국민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국회와 정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국회는 정부의 행정입법을 사전에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신속히 마련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