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우영 기자] 생애 말기에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를 받지 않고 스스로 ‘존엄한 죽음’을 택하겠다는 사람의 수가 320만명을 넘어섰다. 우리 국민이 생각하는 ‘좋은 죽음’의 핵심이 신체적 고통 최소화와 가족 부담 경감이라는 조사 결과와 맞물려, 생애 말기 의사결정을 스스로 준비하려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은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한 사람이 지난해 12월 기준 320만1958명으로 집계됐다고 19일 밝혔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말기환자 상태가 아니더라도 19세 이상 성인이 미리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문서로 남겨두는 제도다. 일명 ‘존엄사법’(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2018년 첫해 8만6691명에서 출발해 2021년 115만8585명, 2023년 214만4273명으로 늘었고, 지난해 8월 300만명을 처음 넘은 뒤 4개월 만에 20만명 이상이 추가 등록했다.
등록자의 성별·연령 구조를 보면 고령층과 여성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성별로는 남성 107만9173명, 여성 212만2785명으로 여성 비중이 남성의 약 두 배에 이른다. 연령대로는 70대가 124만6047명으로 가장 많고, 65∼69세 56만3863명, 80세 이상 56만3655명 순이다. 65세 이상 등록자는 모두 237만3565명으로, 국내 65세 이상 인구 약 1천만명 가운데 23.7%가 생전에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공식 문서로 남긴 셈이다.
실제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이뤄진 사례도 꾸준히 늘고 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말기 환자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요청으로 담당 의사가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는 지난해 말 기준 18만5952명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연명의료계획서, 환자 가족의 전원 합의, 환자 가족 2인 이상 진술 등을 통해 연명의료가 중단된 사례는 모두 47만8378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본인 의사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한 사례는 5만5480건이었다.
연명의료 중단 방식별로 보면, 환자 가족의 진술을 통해 환자의 의사를 확인한 경우가 15만3655건으로 가장 많고, 말기 환자 본인이 의료진과 상의해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에 따른 중단이 15만3022건으로 뒤를 이었다. 본인 사전서약만으로 연명의료 중단이 이뤄진 사례 비중도 점차 늘고 있어, 제도 도입 이후 ‘내 죽음은 내가 결정한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하는 양상이다.
이 같은 흐름은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좋은 죽음’의 조건과도 맞물려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학술지 ‘보건사회연구’에 최근 실린 ‘웰다잉에 대한 태도 예측 모델링 연구’는 만 19세 이상 성인 1021명을 대상으로 2024년 4월23일부터 5월7일까지 온라인 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제시했다. 조사에서 응답자의 97.0%는 생애 말기에 “신체적인 통증을 가급적 느끼지 않는 것”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가족이 간병 과정에서 경제적 부담을 많이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96.2%), 가족이 장기간 병수발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95.3%) 역시 ‘좋은 죽음’을 위해 중요하다고 답했다.
연구진은 “생애 말기에 겪을 수 있는 신체적 통증에 대한 걱정, 가족들이 경제적·심리적 부담을 가급적 느끼지 않게 하고 싶은 마음이 ‘좋은 죽음’ 인식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며 “호스피스 비용 등 효과를 정량적으로 분석해 알리고, 연명의료 중단 과정에서도 통증 조절이 가능한지 등에 관한 정보를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관련 제도와 서비스의 접근성을 넓히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에 따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기관 지정을 확대해왔고, 지난해 지정 기관 수는 800곳을 넘었다. 유형별로는 지역보건의료기관 184곳, 의료기관 241곳, 비영리법인·단체 36곳,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역본부 등 공공기관 241곳, 노인복지관 117곳 등이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은 “연명의료결정제도 도입 이후 ‘존엄한 마무리’ 문화가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점차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며 “취약계층과 장애인, 다양한 언어권 이용자 등 누구나 제도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과 이용 편의성을 높이는 지원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