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MA 벡스코 입구, 4.7m 화강석 작품 시선 압도
정체성 거부한 형상…해석의 여지 넓힌 조형 언어
제15회 2026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AMA)가 열린 벡스코 전시장 입구에 정희욱 작가의 대형 화강석 조각이 설치돼 관람객의 시선을 끌고 있다. / 사진=이승렬 기자
[더파워 부·울·경 취재본부 이승렬 기자] 부산 해운대 벡스코, 제15회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AMA)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거대한 화강석 조각이 관람객을 먼저 맞는다. 높이 3.5m에 달하는 구조물은 사람의 형상을 닮은 듯하면서도 끝내 특정 대상을 지시하지 않는다. 작품 앞에서 발걸음이 느려지는 이유다.
정희욱 작가의 ‘무제(나는 내가 아니다.1.4)’는 화강석과 이끼를 결합한 대형 조각으로, 2017년부터 이어진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거칠게 쌓아 올린 돌의 질감 위에 이끼가 얹히며 시간의 흔적과 생명의 결을 동시에 드러낸다. 단단함과 유기성이 공존하는 장면이다.
형상은 분명 얼굴을 떠올리게 하지만, 눈·코·입의 구체성은 의도적으로 지워졌다. 작가는 이를 ‘얼굴을 상실한 얼굴’로 제시한다. 갈라지고 눌린 듯한 표면, 일부가 절단된 구조는 완결보다 결여에 가까운 상태를 드러낸다. 그 결과, 작품은 특정 인물을 가리키지 않고 관람자의 해석으로 열려 있다.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유사한 형상들도 같은 맥락을 이어간다.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각각 다른 균열과 비율을 지니며, 형상과 탈형상 사이를 오간다. 이는 조각이 더 이상 대상을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의미와 공백 사이에서 스스로를 확장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1962년 경남 의령 출생인 정희욱은 부산공예고와 부산대 예술대학을 졸업했다. 1993년 부일미술대전 대상 수상을 계기로 본격적인 작업 활동을 이어왔으며, 부산시립미술관과 금정문화회관 등지에 주요 작품이 설치돼 있다.
BAMA 전시장 입구를 지키듯 선 이 조각은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으로 기능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물음 대신, ‘나는 무엇이 아닌가’를 되묻는 형상. 관람객은 그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해석을 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