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한승호 기자] K-푸드가 해외 소비자에게 더 이상 ‘매운 음식’ 하나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오픈서베이 ‘K-푸드 트렌드 리포트 2026’에 따르면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은 K-푸드를 매운맛 중심으로 인식하면서도, 실제 경험 이후에는 반찬과 국물 요리, 단맛과 짠맛, 나눠 먹는 식문화까지 더 넓은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 대학·대학원생 100명을 대상으로 지난 4월16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됐다. 응답자는 46개국 국적자로, 서구권 39명, 아시아권 46명, 신흥권 15명으로 구성됐다.
조사는 영문 온라인 정량조사와 이미지 미션이 포함된 정성조사를 함께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오픈서베이는 한국과 자국 식문화를 모두 경험한 외국인 소비자를 통해 K-푸드가 해외 대중시장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살피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자료=오픈서베이
조사 결과 한국 거주 전 외국인들이 떠올린 K-푸드 이미지는 ‘맵고 빨간 음식’이 가장 강했다. 떡볶이, 라면, 한국식 바비큐처럼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특정 메뉴 중심의 인식도 나타났다. 반면 한국 거주 이후에는 K-푸드 이미지를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고 표현한 응답이 52명으로 조사됐다.
한국 생활 이후 새롭게 인식된 요소는 반찬, 국물 요리, 자극적이지 않은 일상식 등이었다. 단맛과 짠맛을 예상 밖의 특징으로 언급한 응답도 40명에 달했다. 이는 해외에서 소비되는 K-푸드가 매운맛 중심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한국 식생활 경험에서는 맛의 폭과 식사 방식 자체가 더 중요한 인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K-푸드의 정체성도 원산지나 전통성에만 묶이지 않았다. 응답자들은 한국적 맛과 풍미, 김치·고추장 등 한국 식재료 활용을 K-푸드의 핵심 요소로 봤다. 동시에 전통 음식이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유행하는 길거리 음식과 간식은 K-푸드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확인됐다.
외국 회사가 만들었더라도 한국 음식을 충실히 재현했다면 K-푸드로 인정할 수 있다는 응답도 과반을 넘었다. 한국 브랜드가 해외에서 생산한 제품도 K-푸드로 인식하는 응답이 적지 않았다. 이는 K-푸드가 ‘한국산 제품’이라는 제조지 중심 개념을 넘어 한국식 맛, 조리법, 트렌드를 담은 음식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스낵류에서는 현지 언어로 재해석되는 흐름이 뚜렷했다. 약과는 서구권 소비자들에게 캐러멜라이징된 쿠키나 꿀맛이 나는 페이스트리처럼 설명됐다. 초코파이는 마시멜로와 초콜릿이 결합된 부드러운 디저트로 받아들여졌다. 꼬북칩은 바삭한 식감과 풍부한 맛을 중심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자료=오픈서베이
반면 떡볶이는 매운맛과 쫄깃한 식감이 강렬하게 기억되는 음식으로 꼽혔다. 다만 쌀떡의 질감이나 고추장 베이스의 낯선 맛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메뉴로도 나타났다. 오픈서베이는 국가별 식문화에 맞춰 떡볶이의 소구 포인트를 달리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맛에 대한 수용도는 권역별로 차이를 보였다. 전체적으로는 쓴맛과 매운맛에 대한 민감도가 높게 나타났다. 서구권은 쓴맛과 예상 밖의 단맛에 민감했고, 특히 식사 메뉴에서 단맛이 느껴질 때 낯설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아시아권은 매운맛 자체는 어느 정도 수용하지만 짠맛과 특정 맛의 과도한 지배감에 민감했다.
신흥권에서는 맛의 강도보다 낯선 조합이 장벽으로 작용했다. 발효 음식의 향과 맛에 대한 언급이 많았고, 김치처럼 잘 알려진 음식도 발효 정도가 강할 경우 부담스럽게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K-소스에서는 간장이 가장 활용도가 높은 소스로 꼽혔다. 가장 활용도가 좋다고 생각하는 K-푸드 소스·양념 1순위 응답에서 간장은 40.0%를 기록했다. 고추장은 28.0%, 된장 15.0%, 쌈장 11.0% 순이었다.
권역별 차이도 있었다. 서구권에서는 간장이 43.6%로 가장 높았고, 아시아권에서는 고추장이 41.3%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이는 간장이 비교적 범용적인 글로벌 소스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고추장은 매운맛에 익숙한 아시아권에서 활용 가능성이 더 크게 평가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K-소스를 활용하고 싶은 음식으로는 면과 파스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국 소스를 활용하고 싶다고 답한 응답자 가운데 54.3%가 면·파스타를 꼽았다. 이어 스프레드 및 딥 30.9%, 단백질류 29.8%, 스낵·간식 17.0%, 서구식 패스트푸드 16.0% 순이었다.
특히 서구권에서는 K-소스를 스프레드나 디핑소스 형태로 활용하고 싶다는 응답이 36.8%로 나타났다. 이는 K-소스가 한식 조리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빵, 스낵, 육류, 파스타 등 현지 식문화 안에서 재조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자료=오픈서베이
라면은 K-푸드 현지화가 가장 활발하게 나타나는 품목으로 조사됐다. 라면 구매 경험이 있는 응답자 가운데 제품 설명서대로 조리한다는 응답은 38.1%에 그쳤다. 나머지 응답자들은 재료를 추가하거나 조리법을 바꿔 자신만의 방식으로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변형 방식은 국가별로 달랐다. 아시아권 소비자는 K-라면에 해산물, 향신료, 유제품을 결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도네시아 응답자는 새우와 어묵 등 해산물을 더하는 방식을 제안했고, 말레이시아 응답자는 유부와 채소, 단백질을 추가하는 조합을 언급했다. 인도 응답자는 버터와 향신료를 활용해 매운맛을 중화하거나 크리미한 풍미를 더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신흥권 소비자는 국물보다 건식 조리에 가까운 방식으로 라면을 재구성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포르투갈 응답자는 파스타처럼 국물 없이 조리하고 계란이나 닭가슴살을 더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케냐 응답자는 현지 향신료와 채소를 더해 자국식 식사에 가까운 형태로 라면을 변형했다.
오픈서베이는 이 같은 결과가 K-푸드 현지화 전략의 단서를 보여준다고 봤다. 단순히 한국 메뉴를 그대로 수출하기보다 각국 소비자가 이미 익숙한 조리법, 식감, 향신료, 식사 방식과 결합할 때 수용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픈서베이 관계자는 "K-푸드의 해외 확산은 이제 특정 메뉴의 인기보다 현지 소비자가 어떻게 해석하고 변형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매운맛과 고추장, 라면 같은 상징적 요소를 넘어 간장, 스낵, 디핑소스, 건식 라면 조리법 등으로 활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K-푸드는 현지 식문화 속에서 다시 만들어지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