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경호 기자] 반도체 수출 호조로 국내 성장세가 확대되고 있지만, 물가 상승 압력과 금융안정 리스크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는 한국은행의 진단이 나왔다.
한국은행은 신현송 총재가 창립 제76주년 기념사에서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고 늦지 않게 금리를 인상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고 12일 밝혔다.
신 총재는 최근 국내 경제에 대해 “중동상황과 관련한 높은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AI 확산에 따른 반도체 수출 호조 등에 힘입어 성장세가 크게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1.8%를 기록해 당초 예상을 크게 웃돌았고, 명목성장률도 반도체 가격 상승에 따른 교역조건 개선 영향으로 10.5%의 확장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다만 성장의 쏠림 현상은 경계했다. 신 총재는 반도체 경기 호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명목 GDP 증가에 따른 세수 확충, 소득 개선, 투자 확대 등으로 내수 회복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성장의 IT 부문에 대한 의존도가 커서 부문 간 격차가 여전한 점에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물가에 대해서는 중동전쟁 장기화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 영향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 총재는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로 올라섰고, 근원물가 오름세도 일부 개인서비스 가격 상승 등으로 2%대 중반까지 높아졌다고 밝혔다. 특히 생활물가가 소비자물가를 웃도는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가계 기대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금융안정 측면에서는 수도권 주택시장과 레버리지 투자 확대를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신 총재는 수도권 주택시장에서 매매 및 전월세 가격의 높은 오름세가 이어지고 추가 상승 기대도 다시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또 주가가 빠르게 오르는 과정에서 레버리지를 활용한 이른바 ‘빚투’가 크게 늘었고, 이에 따라 가계대출 증가 규모도 5월 들어 큰 폭으로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신 총재는 현재의 성장, 물가, 금융안정 흐름이 통화정책 방향을 비교적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통화정책은 정책변수 간 상충관계에 직면하기 마련이지만, 지금은 그러한 상충이 크지 않다”며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고 늦지 않게 금리를 인상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외환시장에 대해서는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의 높은 수준에서 변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기업의 납세와 국내투자 확대를 통해 원화 수요를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향후 환율이 점차 안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구조적 과제로는 주택시장 및 가계부채 리스크 점검, 정부와의 거시건전성정책 공조, 원화 국제화 등을 제시했다. 신 총재는 다음 달 예정된 외환시장 24시간 개장과 이후 계획 중인 역외 원화결제시스템 구축을 언급하며 외국인 투자자의 원화시장 접근성을 높이고 역외 선물환 거래 수요를 역내로 흡수하는 방향으로 유관기관과 협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