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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월렛, 다른 구조…글로벌 금융사의 선택

이경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6-20 08:25

코인베이스·스트라이프·페이팔·레볼루트 사례로 본 목적별 월렛 설계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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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파워 이경호 기자] 글로벌 금융·핀테크 기업들은 디지털 월렛을 하나의 표준 구조로 설계하지 않는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기관 보관, 일반 이용자 서비스, 결제, 개발자 인프라, 자동화 거래의 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월렛 구조를 병행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 차이는 디지털 월렛이 단순한 보관 도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월렛은 키를 어디에 둘지, 누가 거래를 승인할지, 사업자가 어떤 규칙을 강제할지, 사고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질지를 결정하는 구조다. 따라서 어떤 사업을 하느냐에 따라 적합한 월렛도 달라진다.

코인베이스는 기관 자산을 보관하는 커스터디, 일반 사용자를 위한 스마트 월렛, 개발자와 AI 에이전트가 활용하는 CDP 월렛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운영한다. 기관 보관에는 고객별 주소 분리와 다단계 승인 구조가 중요하고, 일반 사용자 서비스에는 시드 구문 없이도 자산을 통제할 수 있는 사용성이 중요하다. 자동 실행 영역에서는 격리된 환경 안에서 정책 엔진이 거래를 통제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 사례는 월렛 구조가 보안 기술의 우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관 보관은 규제 준수와 고객자산 분리가 핵심이고, 일반 사용자 월렛은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개발자와 AI 에이전트 영역에서는 특정 조건을 충족한 거래만 실행되도록 권한을 정밀하게 제한해야 한다. 같은 사업자라도 목적이 달라지면 키 보관 방식과 서명 권한, 책임 구조가 함께 달라진다.

결제와 송금 영역에서는 중앙원장형 구조가 기본에 가깝다. 소액 결제나 송금을 할 때마다 모든 거래를 블록체인 위에서 직접 처리하면 수수료와 처리 시간이 문제가 된다. 이 때문에 사용자 잔고는 내부 장부로 관리하고, 외부 송금이나 정산이 필요한 일부 흐름에서만 블록체인 거래가 발생하는 방식이 활용된다.

스트라이프와 브리지 사례는 결제 인프라에서 이런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가맹점은 기존 결제 대시보드처럼 잔고와 정산 흐름을 확인하지만, 백엔드에서는 스테이블코인 정산과 보관 구조가 별도로 운영된다. 사용자의 화면은 통합돼 있어도 실제 보관 책임과 정산 경계는 분리되는 방식이다.

블록의 캐시앱과 비트키 사례는 결제용 월렛과 보관용 월렛을 나누는 전략에 가깝다. 캐시앱은 빠른 결제와 쉬운 사용성을 위해 사업자 중심 구조에 가깝게 운영된다. 반면 비트키는 사용자가 직접 자산 통제권을 갖는 자기수탁 하드웨어 월렛 성격이 강하다. 같은 비트코인을 다루더라도 일상 거래와 장기 보관은 요구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설계를 택한 셈이다.

페이팔과 레볼루트도 사용자 화면과 백엔드 책임 구조를 분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페이팔은 대규모 결제 사용자 기반 위에 외부 신탁 보관 구조를 결합했고, 레볼루트는 가상자산 사업 법인과 외부 보관 인프라를 나눠 책임 경계를 다층화했다. 이용자에게는 하나의 앱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자산의 성격과 보관 주체에 따라 다른 구조가 작동한다.

기업용 월렛 인프라 영역에서는 또 다른 요구가 발생한다. 파이어블록스, 프리비, 턴키, 앵커리지 같은 사업자는 다른 기업이 자체 서비스 안에서 가상자산을 다룰 수 있도록 키 관리, 서명, 거래 규칙 기능을 제공한다. 이때 핵심은 인프라 사업자가 고객사 자산을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하고, 고객사의 거래 규칙이 코드와 정책 엔진으로 강제되도록 설계하는 일이다.

토큰화 자산은 더 까다로운 구조를 요구한다. 주식, 채권, 부동산, 예금처럼 법적 권리를 나타내는 자산이 블록체인 위에 올라오면 아무 주소로나 이전돼서는 안 된다. 적격 투자자 확인, 발행자 통제권, 동결이나 강제 이전 권한이 필요하다. 이 영역에서는 익명 자기수탁 모델만으로는 작동하기 어렵고, 자산의 법적 지위와 보유자 자격 모델이 월렛 구조를 결정한다.

결국 글로벌 기업들의 월렛 전략은 하나의 지갑으로 모든 기능을 담는 방향이 아니다. 결제, 보관, 토큰화 자산, Web3, 자동화 위임, 신원 검증은 서로 다른 책임 구조를 요구한다. 앞으로의 경쟁은 더 많은 기능을 한 화면에 붙이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목적과 책임 경계를 하나의 사용자 경험 안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연결하느냐가 디지털 월렛 전략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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