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재건축 현장서 임대주택 배치 논란 반복…“완전 혼합 강제보다 실질 통합 유도해야” 지적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은 없음./연합뉴스
[더파워 이경호 기자]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한 단지 안에 섞어 배치하는 소셜믹스 정책이 도입 23년을 맞았지만, 서울 주요 재건축 현장에서는 여전히 갈등의 핵심 쟁점으로 남아 있다.
사회통합이라는 정책 취지와 조합원 재산권 보호 요구가 충돌하면서 사업 지연과 설계 변경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3일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서울 재건축 단지에서 임대주택 배치 방식을 둘러싼 갈등이 다시 커지고 있다.
소셜믹스는 분양주택과 공공임대주택을 한 단지 안에 혼합 배치해 주거지에 따른 사회적 낙인과 계층 간 단절을 줄이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국내에서는 2003년 서울시가 공공임대주택 공급계획과 함께 혼합단지 확대를 주요 과제로 내세우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2005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을 거치며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일정 비율 이상의 임대주택 공급이 의무화됐다. 과거 영구임대주택이 특정 지역이나 외곽에 집중되며 발생한 지역 슬럼화와 사회적 단절을 막겠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정책 취지와 별개로 임대주택 배치 방식이 반복적인 충돌 요인이 되고 있다. 서울시가 최근 완전 혼합 방식의 소셜믹스 원칙을 강화하면서 조합원들은 재산권 침해와 역차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심의 과정이 거론된다. 서울시 통합심의위원회는 임대주택이 한강변 인접 동이나 선호 층에 균등하게 배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의를 보류한 바 있다. 이촌동 한강맨션 등 주요 단지에서도 임대주택 배치를 둘러싼 조합원 반발이 이어졌다.
정비업계에서는 소셜믹스 기준이 설계 단계에서 명확하게 반영되지 않으면 사업 일정에도 부담이 생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심의 보류, 설계 수정, 조합원 재논의가 반복되면 금융비용과 공사비 부담이 커지고, 이는 다시 조합원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설계사들이 수주 과정에서 조합원 선호를 의식해 조합원 동과 임대·일반분양 동을 사실상 분리하는 설계를 제안하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대주택을 물리적으로 일부 섞어 놓더라도 조합원 물량을 선호 동과 선호 층에 먼저 배치하는 구조라면 서울시 심의 기준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소셜믹스가 단순히 동호수를 섞는 방식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준공 이후에도 커뮤니티 시설 이용, 주차장 배정, 관리 의결권 등 단지 운영 과정에서 분양 세대와 임대 세대 사이의 갈등이 남을 수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무조건적인 완전 혼합이나 무작위 추첨만 요구하기보다, 조합원 수용성과 실질적 주거 통합을 함께 고려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임대주택을 선호 동이나 선호 층에 배치하는 조합에 대해서는 추가 용적률 인센티브, 공사비 일부 지원, 대형 평형 공급 허용 등 경제적 유인책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조합원이 소셜믹스를 비용 부담으로만 인식하지 않도록 제도 설계를 정교하게 해야 한다는 취지다.
설계 공모 초기 단계부터 서울시의 사전 검토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설계사가 수주를 위해 실현 가능성이 낮은 분리형 설계를 제시한 뒤, 심의 단계에서 다시 수정되는 구조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 공공주택 사전검토 기능을 정비계획 수립과 설계 공모 초기 단계로 앞당겨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사업 초기부터 소셜믹스 적합성을 점검하면 조합과 설계사, 인허가 기관 사이의 불필요한 충돌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물리적으로 섞어놓기만 하는 소셜믹스는 오히려 더 큰 갈등을 만들 수 있다”며 “주택 품질을 일반분양 수준으로 맞추고 단지 운영권의 형평성까지 보장하는 실질적 통합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 재건축 현장에서 소셜믹스가 사업지연 요인으로만 작동하지 않으려면, 조합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상 구조와 명확한 심의 기준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