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설아 기자] 소화성궤양을 남성에게 더 흔한 질환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령층으로 갈수록 남녀 격차가 줄고, 폐경 후 여성에서는 출혈과 천공 등 중증 합병증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 대한상부위장관·헬리코박터학회 김병욱 회장, 한림대의대 방창석 교수 등이 참여한 공동 연구팀은 소화성궤양의 성별 차이를 다룬 연구 68편을 종합해 국제학술지 ‘Gut and Liver’에 발표했다.
소화성궤양은 위나 십이지장 점막이 깊게 헐어 상처가 생기는 질환이다. 증상이 악화되면 출혈이나 천공으로 이어질 수 있어 위험요인에 따른 예방과 치료 전략이 중요하다.
연구팀은 소화성궤양 발생과 합병증, 폐경, 약물 반응 등에서 나타나는 남녀 차이를 살폈다. 향후 진료지침 개발 과정에서 성별과 생애주기 요인을 반영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분석이다.
분석 결과 과거 약 2대 1 수준이던 남녀 환자 비율은 최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좁혀졌다. 일부 국내 자료에서는 80세 이상 여성의 출혈성 소화성궤양 발생률이 같은 연령대 남성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발생률과 질병 부담은 여전히 남성이 높았다. 다만 남성의 감소폭이 커지면서 성별 격차가 점차 줄어드는 흐름이 확인됐다.
사망률에서는 여성의 위험이 더 높게 나타났다. 전국 단위 자료에서 출혈성 소화성궤양 환자의 30일 사망률은 여성 3.20%, 남성 1.83%였다.
천공성 소화성궤양에서도 차이가 컸다. 여성 사망률은 10.03%, 남성은 2.03%로 집계됐다.
연구진은 고령 여성에서 에스트로겐 감소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에스트로겐은 위와 십이지장 점막의 방어 기능을 돕는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은 폐경기를 지나 고령으로 갈수록 에스트로겐 분비가 줄어 보호 효과가 약해질 수 있다. 실제 수술로 조기 폐경을 겪은 여성은 같은 연령대의 폐경 전 여성보다 소화성궤양 위험이 약 38%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약물 사용도 주요 변수로 지목됐다. 폐경 후 관절질환 등으로 소염진통제 사용이 늘어나는 점이 소화성궤양 위험과 관련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팀 분석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고령층에서 소염진통제 사용자 중 75%가 여성이다. 연구진은 폐경기 호르몬 변화, 고령, 동반 질환, 약물 노출이 함께 작용해 여성의 소화성궤양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봤다.
진료지침의 공백도 지적됐다. 연구진이 소화성궤양, 상부 위장관 출혈, 위장 보호 관련 주요 국제 진료지침 13개를 비교한 결과 성별이나 폐경·호르몬 상태를 공식 위험평가에 포함한 지침은 없었다.
현재 지침은 고령, 과거 궤양 병력, 소염진통제와 항혈전제 사용 등을 위험요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폐경 후 여성에서 위험도와 치료 반응이 달라질 가능성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번 연구는 소화성궤양을 둘러싼 성별 차이를 종합하고, 기존 진료지침이 반영하지 못한 생애주기 변수를 짚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구진은 향후 진단·치료 가이드라인을 재수립할 때 성별, 연령, 폐경 여부, 약물 사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병욱 대한상부위장관·헬리코박터학회 회장과 방창석 진료지침개발위원장은 “약제성 소화성궤양 진료지침을 새롭게 개발하고 있는 바, 성별과 폐경 여부 등 호르몬 상태를 중요한 변수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특히 항혈소판제나 항응고제를 사용하는 고령 여성이 높은 중증 진행 및 사망 위험에 노출돼 있는 만큼, 70세 이상 여성에서는 위산분비억제제 사용 등 위장 보호 전략을 제시하고 성별에 따른 약물 반응 차이를 함께 평가하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