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정보원, 행정DB·2297개 사업체·재직자 조사 종합 분석
AI 고노출 청년 고용 감소폭 컸지만 챗GPT 출시 전부터 하락
AI 도입 사업체 75.6% 생성형 AI 활용…“인력감축보다 업무 효율화”
단순업무 자동화에 청년 ‘숙련 사다리’ 약화 우려…직무전환 훈련 필요
출처 Magnific
[더파워 이우영 기자] 인공지능(AI) 확산이 곧바로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고용 둔화는 AI에 의한 노동 대체보다 청년 인구 감소와 경제활동 참여 축소 등 노동 공급 측 요인의 영향이 더 컸고, 실제 AI를 도입한 기업들도 인력 감축보다는 반복 업무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AI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31일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고용보험 행정통계와 사업체 조사, 패널조사 등을 종합해 AI가 국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고용이슈’ 2026년 여름호를 발간했다. 이번 연구는 AI가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대체효과’뿐 아니라 업무 효율을 높이는 ‘보완효과’, 생산성을 높여 시장을 확대하는 효과, 새로운 업무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효과까지 함께 분석했다.
고용정보원이 국제적으로 활용되는 AI 노출도 지수를 토대로 직업을 고노출·중노출·저노출·비노출군으로 나눠 고용보험 취득자 변화를 분석한 결과, AI 활용이 본격화된 2023년 이후 특정 노출군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직종에서 신규 고용보험 취득자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이 신규 취득자 감소 원인을 분해한 결과에서는 AI 확산보다 청년 인구 감소와 경제활동참가율 하락 등 노동 공급 측 요인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 AI가 많이 활용되는 직업에서만 고용이 집중적으로 감소한 형태가 아니었던 만큼 최근 고용 둔화를 곧바로 AI의 일자리 대체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25년 기준 고용보험 가입자 가운데 AI 고노출 직업에 종사하는 인원은 291만6000명으로 전체의 19.1%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한국직업정보와 고용행정 데이터베이스를 연계해 415개 직업의 AI 노출도를 산출했다.
실제 생성형 AI 사용 데이터를 활용한 분석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앤트로픽의 생성형 AI ‘클로드’ 실제 사용 데이터와 지역별고용조사를 연계한 결과 국내 취업자의 평균 AI 노출도는 8.0% 수준으로, 인지적 업무 비중이 높은 사무직을 중심으로 노출도가 높게 나타났다.
챗GPT가 출시된 2022년 하반기를 전후해 전체 취업자 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상도 관찰되지 않았다. 다만 30세 미만 청년층만 놓고 보면 AI 노출도가 높은 직업의 고용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2022년 취업자 규모를 100으로 놓고 비교한 결과 2025년 30세 미만 AI 고노출 직업군의 고용지수는 86.6까지 떨어졌다. 저노출 직업군은 같은 기간 92.5를 기록해 고노출군의 감소폭이 5.9포인트 더 컸다.
하지만 AI 고노출 직업에 종사하는 청년층의 고용 감소는 챗GPT 출시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고용정보원은 이 때문에 고노출군에서 나타난 청년 고용 감소를 생성형 AI의 영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고 청년 인구 감소 등 인구구조적 변화가 함께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기업 현장에서도 AI가 아직 대규모 인력 대체 수단으로 활용되는 단계는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21개 산업의 2297개 사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AI를 도입한 사업체 비율은 28.6%였다.
고용정보원은 국내 기업의 AI 활용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고 평가했다. AI를 도입한 사업체 가운데 75.6%는 생성형 AI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주된 활용 목적도 인원 감축보다는 반복 업무를 줄이고 업무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는 데 집중돼 있었다.
다만 AI 도입이 반드시 신규 일자리 확대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AI를 도입한 기업일수록 향후 매출 증가에 대한 기대는 높았지만 고용 역시 같은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는 이른바 ‘성장-고용 디커플링’ 현상이 관찰됐다.
이에 따라 AI 시대의 고용정책도 단순히 일자리 숫자를 얼마나 늘리고 줄일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기존 직무를 어떻게 다시 설계하고 근로자가 새로운 업무로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인지에 초점을 옮겨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산업별로 AI가 채용에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영향도 달랐다. 기계장비와 연구개발, 정밀기기, 정보통신 등에서는 AI 관련 인력수요와 전체 신규 채용수요가 모두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대로 사업지원서비스와 보건·사회 분야, 문화·예술 등에서는 AI 인력수요와 신규 채용수요가 모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AI를 실제 업무에 활용하는 근로자들은 생산성과 업무 효율 개선 효과를 비교적 뚜렷하게 체감하고 있었다. 고용정보원이 IT 개발직과 시각·디지털 디자인, 일반사무직 근로자 305명을 조사한 결과 AI 활용에 따른 전반적인 역량 향상 정도는 5점 만점에 평균 2.97점이었다.
세부적으로는 업무 효율성 향상이 3.40점으로 가장 높았고 문제해결역량이 3.15점, 생산성이 3.14점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 창의성 향상은 2.79점, 협업역량은 2.37점으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직종별 평균 역량 향상 정도는 IT 개발직이 3.11점으로 가장 높았고 일반사무직 2.96점, 시각·디지털 디자인 직군 2.85점 순이었다.
AI 활용이 새로운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재직자 조사에서는 52.1%가 AI 기술을 새롭게 습득해야 하는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고 38.7%는 일자리 불안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에서는 회사가 공식적으로 AI 도입을 결정하기 전에 근로자 개인이 생성형 AI를 먼저 사용하는 ‘상향식 도입’도 활발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인사와 평가, 보상 등 기업 내부 제도는 이러한 업무 방식의 변화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 시기상으로 2023년 고용보험 취득자가 감소로 전환되었으나, 고용보험 가입자 증가율을 요인분해한 결과는 AI 확산에 따른 영향보다 청년 인구 감소와 경제활동참여 축소에 따른 노동시장 공급 측면의 요인이 더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확인된다. (윤정혜. 고용이슈 여름호. '고용행정DB로 본 직업별 AI 노출도와 고용 현황')
청년층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됐다. 신입 직원이 자료 정리와 기초 분석, 문서작성 등 비교적 단순한 업무부터 경험하면서 업무 능력을 키우는 기존의 ‘숙련 사다리’가 생성형 AI 자동화로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주니어 직원이 기초 업무를 반복하며 직무 지식과 경험을 쌓은 뒤 난도가 높은 업무로 이동했지만, AI가 초급 업무부터 대신하면 청년들이 숙련을 형성할 기회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 고용정보원은 이에 따라 AI를 실제 업무와 결합해 경험할 수 있는 ‘AI 온보딩형 실무훈련’과 청년층 일 경험 확대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반면 AI를 직접 활용하는 청년 재직자의 업무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높았다. 2025년 청년패널조사를 분석한 결과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청년은 그렇지 않은 청년보다 업무 내용에 대한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다.
특히 단순한 업무 만족보다는 직장에서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의미하는 ‘자기발전 만족도’가 뚜렷하게 높았다. 성향점수매칭 방식으로 분석한 결과 생성형 AI 활용자의 자기발전 추구 만족도는 비활용자보다 0.132포인트 높았다. 업무시간 절약 등 AI 활용으로 얻는 체감 이점이 클수록 만족도도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용정보원은 AI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산업별 AI 수용도 조사를 정례화하고 AI 노출도가 높은 직업의 고용 변화를 지속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기존 직업을 지키거나 줄어드는 일자리를 단순 보충하는 방식보다 직무 전환과 재교육을 중심으로 고용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AI가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를 대체하더라도 사람이 문제 해결과 판단, 창의적 업무로 이동할 수 있도록 직업훈련 체계를 바꾸고, 직업상담사의 역할 역시 단순 취업 알선에서 경력 전환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번 여름호에는 AI와 노동시장 분석 외에 직업훈련 참여 방식이 취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도 포함됐다. 재정지원일자리 구직자훈련 참가자 45만4000명을 분석한 결과 여러 직업훈련에 중복 참여한 경우 취업 확률이 7.47~8.03%포인트 높아졌으며 별도의 임금 손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짧은 기간 여러 훈련과정을 집중적으로 이수하는 방식은 취업 이후 임금 상승과 연관됐고, 기존과 다른 직종의 훈련을 추가로 받는 경우에는 취업 확률을 높이는 효과가 상대적으로 컸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구직자의 경력과 희망 직종에 맞춘 직업훈련 패키지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권우현 한국고용정보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AI가 일자리에 미치는 궁극적 영향은 기술 자체의 속성보다 사회적·정책적 선택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산업과 직업, 직무 수준에서 AI 기술과 노동의 상호작용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AI를 단순히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잠재력을 확장하는 파트너로 활용한다면 고용안정과 생산성 향상의 상생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이야말로 '인간 중심의 AI 노동시장 발전전략'을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