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 배터리급 수산화리튬, 탄산리튬보다 8.3% 낮아…2023년부터 가격 역전 지속
ESS·LFP 확대에 톈치·SQM·앨버말 생산라인 전환…‘얼마나 만드나’보다 유연성이 경쟁력
포스코, 아르헨티나 3·4단계 탄산리튬 각각 2.5만톤 검토…LFP 양극재와 연결
탄산리튬/연합뉴스
[더파워 이경호 기자] 리튬 시장에서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가격 공식이 깨지고 있다. 고성능 전기차 배터리에 주로 쓰이는 수산화리튬이 탄산리튬보다 비싸다는 공식 대신, 탄산리튬이 더 높은 가격을 받는 현상이 3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배경에는 배터리 수요의 중심 이동이 있다. 고니켈 배터리와 순수전기차(BEV) 성장만 바라보던 시장에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ESS)가 빠르게 커지면서 탄산리튬의 상대적인 가치가 높아졌고, 글로벌 리튬 업체들은 실제 생산라인까지 바꾸기 시작했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8월 31일 중국 배터리급 수산화리튬 가격은 톤당 14만4000위안으로 탄산리튬보다 8.3%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탄산리튬이 수산화리튬보다 비싼 가격 역전 현상은 2023년 5월 이후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수산화리튬이 고니켈 양극재의 핵심 원료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형성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LFP 배터리와 ESS 시장이 성장하면서 탄산리튬 수요가 빠르게 늘었고, 시장가격에도 이런 변화가 반영되기 시작했다.
전기차 성장세가 예상보다 더딘 상황에서 ESS가 새로운 수요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글로벌 리튬 업체 SQM은 올해 2분기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 수요 증가가 예상보다 느린 BEV 성장을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리튬 업체들의 대응은 가격 전망을 넘어 실제 생산전략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기존 수산화리튬 전용 생산라인을 탄산리튬 생산으로 돌리거나 시장 상황에 따라 두 제품을 선택해서 만들 수 있는 겸용 설비로 바꾸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중국 톈치리튬의 장쑤 장자강 생산기지는 연간 수산화리튬 3만톤 또는 탄산리튬 2만6000톤을 생산할 수 있는 유연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다. 톈치리튬은 올해 상반기 이 라인을 수산화리튬에서 탄산리튬 생산으로 전환했다.
SQM도 칠레의 기존 수산화리튬 공장을 탄산리튬과 수산화리튬을 선택 생산할 수 있는 겸용 설비로 바꾸고 있다. 완공 목표 시점은 2027년 중반이다.
미국 앨버말은 중국 광시성 친저우에 있는 리튬 전환설비의 수산화리튬 생산능력 가운데 약 1만톤을 탄산리튬으로 재배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업체들이 증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확보한 생산능력의 제품 구성을 바꾸기 시작한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리튬 산업의 경쟁 기준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광산이나 염호를 얼마나 확보했고 연간 생산능력이 몇 만톤인지가 핵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수요 변화에 맞춰 어떤 리튬 제품으로 얼마나 빠르게 전환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수산화리튬 설비를 탄산리튬으로 돌린다고 무조건 수익성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설비 전환 비용과 생산거점의 원가 구조, 제품 품질과 고객 인증까지 함께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앨버말은 친저우에서 약 1만톤 규모의 수산화리튬 생산능력을 탄산리튬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투자를 수백만달러 초반으로 설명했다. 기존 설비를 활용할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생산원가가 높은 설비는 가격이 회복돼도 살아남기 어렵다. 앨버말은 호주 케머튼의 고원가 수산화리튬 설비 일부를 올해 2월 가동 중단했다.
다른 공장에서 필요한 물량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전체 판매량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수익성은 오히려 개선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같은 리튬 생산능력이라도 어디에서 어떤 원가로 생산하느냐에 따라 경제성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품질도 중요한 변수다. 리튬은 생산했다고 곧바로 모든 고객에게 같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는 원료가 아니며, 배터리업체가 요구하는 규격과 품질을 충족해야 한다.
신규 제품의 고객 인증에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 생산능력 숫자만으로 실제 판매 가능한 물량과 수익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국내에서는 포스코그룹이 변화한 수요 구조에 맞춰 리튬과 양극재 사업을 동시에 조정하고 있다. POSCO홀딩스는 아르헨티나 염호리튬 3단계와 4단계에 각각 연산 2만5000톤 규모의 탄산리튬 생산능력을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가동 목표 시점은 3단계가 2030년, 4단계가 2033년이다. 다만 기존 수산화리튬 공장을 탄산리튬 생산으로 전환하는 방식은 아니며, 아직 최종 투자결정이 이뤄지지 않은 신규 증설 계획이다.
사업 일정도 남아 있다. 사전타당성조사(PFS)는 올해 말, 최종투자결정(FID)은 2027년 말을 목표로 하고 있어 실제 투자 규모와 제품 구성은 향후 달라질 수 있다.
포스코가 탄산리튬을 늘리는 방향을 검토하는 것은 그룹 내 LFP 사업과도 맞물린다. 포스코퓨처엠은 2027년부터 2032년까지 LFP 양극재 19만톤 이상을 공급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상류에서는 탄산리튬 생산 확대를 검토하고, 하류에서는 LFP 양극재 사업을 키우는 구조다. 리튬 가격의 단기 등락에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배터리 수요의 장기적인 변화에 맞춰 밸류체인 자체를 조정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 리튬 사업의 수익성 개선도 나타나고 있다. 포스코아르헨티나는 2분기 영업이익 110억원을 기록하며 흑자로 돌아섰다.
4분기부터는 고객 인증을 받은 제품 판매가 시작될 예정이어서 미인증 제품에 적용되던 약 10%의 가격 할인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생산량뿐 아니라 인증 여부가 실제 판매가격과 수익성을 좌우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최근 글로벌 리튬 업체들의 움직임은 시장의 질문이 ‘리튬이 얼마나 부족한가’에서 ‘어떤 리튬이 필요한가’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기차 중심의 고니켈 배터리가 빠르게 성장할 때는 수산화리튬이 주목받았지만 LFP와 ESS가 새로운 성장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탄산리튬의 수요 기반이 넓어지고 있다.
생산업체 입장에서도 하나의 제품에 고정된 대규모 설비보다 탄산리튬과 수산화리튬 사이에서 생산을 조절할 수 있는 유연성이 중요해졌다. 원가 경쟁력이 낮은 생산거점은 정리하고 기존 설비를 전환하거나 신규 증설의 제품 구성을 다시 짜는 움직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리튬 시장의 다음 경쟁은 단순한 생산능력 확대전이 아닐 수 있다. ESS와 LFP가 배터리 수요의 지형을 바꾸는 가운데 어느 업체가 시장 변화를 먼저 읽고 생산제품과 거점, 고객 인증까지 빠르게 재배치할 수 있는지가 새로운 경쟁력을 가를 전망이다.